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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973: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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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4일 (월) 17:03 기준 최신판


명천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보령 명천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보령시 명천동 1118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기둥 건물터, 소성 유구, 도랑,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역삼동 유형, 송국리식 집자리, 덧띠 토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황재훈



설명

충청남도 보령시 명천동 1118 일대에 위치한다. 보령 명천 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따라 2015~2016년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는 총 3개 지역(Ⅰ~Ⅲ지역)으로 구분되는데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과 청동기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은 대천천과 서해가 맞닿는 연안 지대로 보령시의 동쪽 옥마산과 성주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가지 능선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서쪽과 북쪽에서 흐르는 궁촌천과 대천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은 해발 28~30m의 구릉 지대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총 70기가 조사되었고 구덩이 131기, 기둥 건물터 17기, 소성 유구 3기, 도랑 7기, 방형 유구 2기, 돌널무덤 35기, 돌뚜껑움무덤 13기, 구덩이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세장방형, 말각 방형과 원형, 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장방형은 2기가 조사되었는데 구릉 사면부와 능선 평탄부에 입지한다. 각각 길이 10.84m, 너비 3.47m, 깊이 0.36m, 길이 15.24m, 너비 3.26m, 깊이 0.3m이며 면적은 37.6㎡, 49.6㎡이다. 벽면 바닥에는 기둥 구멍이 열을 지어 확인되며 모서리에는 평면 원형의 저장 구덩이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壁溝)과 내부 배수로 시설도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각각 2기와 7기가 설치되었는데 중앙에서 짧은 벽에 치우쳐 있거나 중앙부를 따라 열을 지어 확인된다. 모두 구덩식(土壙式)이며 크기는 지름 0.5~1.12m 정도이다. 출토된 유물은 극히 소량으로 민무늬 토기 편과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가락바퀴 등이 확인된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구릉 능선과 사면부에 입지한다.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되는데 원형이 다수를 점한다. 타원형 구덩이의 구조는 다양한 편인데 양단에 기둥 구멍이 한 개씩 배치된 2주식 구조가 가장 많으며 그 외에 외곽에 4개의 기둥 구멍이 추가로 설치된 4주식 구조, 기둥 구멍이 없는 무주식도 확인된다. 전체적인 규모는 지름 2.62~8.32m로 편차가 큰데, 4주식이 2주식에 비해 규모가 더 크다. 타원형 구덩이의 규모 또한 긴 지름 0.42~1.44m로 4주식 집자리의 타원형 구덩이가 훨씬 크다.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 외에도 벽 도랑과 내부 배수로, 출입구 시설, 점토둑 시설 등이 확인된다. 일부에서는 증개축 흔적이 확인된다. 송국리식 토기,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붉은 간 토기, 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 돌창(石槍), 통슴베 돌살촉, 버들잎 모양 돌살촉(柳葉形石鏃), 삼각 돌칼, 굴지구(掘地具),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돌도끼 , 숫돌(砥石), 돌끌(石鑿),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은 모두 4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중앙에 1기의 화덕 자리가 시설되어 있다. 길이 2.7~3.05m, 너비 2.16~2.66m, 면적 5.8~8.1㎡로 소형에 속한다. 유물은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 미완성 석기만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구릉 능선과 사면부에 집중 분포하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 말각 방형, 원형, 부정형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규모는 길이 0.44~5.08m, 너비 0.4~3.93m, 깊이 0.04~0.51m 정도이다. 골아가리 토기, 붉은 간 토기, 돌살촉, 삼각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구릉 정상과 사면부에 입지한다. 평면 형태는 방형과 세장방형으로 구분되며 1×1칸~1×6칸의 구조를 보인다. 길이 2.24~10.55m, 너비 2~2.84m, 면적 4.4~30.1㎡로 다양한 편이다.

소성 유구는 타원형과 부정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전체 길이는 3.4~5.32m, 너비는 1.68~3.6m, 깊이는 0.76~0.8m 정도이다. 1호의 경우 천정부가 남아 있으며 연소부, 소성실, 배연부를 갖춘 오름 가마(登窯) 형태이다. 내부에서는 다량의 소토와 목탄, 재와 함께 민무늬 토기 파편이 확인된다.

돌널무덤(石棺墓)과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은 해발 25~26m 사이의 평탄면에 입지하는데 크게 두 지점에 조영되어 있다. 무덤군은 집자리, 구덩이, 기둥 건물터 등 생활 유구와 공간적으로 분리된 채 조성되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뚜껑돌(蓋石)이 남아 있는데 무덤방(墓室)과 무덤 구덩이(墓壙) 위로 1~4단의 판돌(板石)을 놓아 시설하였다. 무덤방은 대부분 점판암제의 얇은 판돌을 바로 세워 축조하였는데 일부 벽석은 깬돌(割石)을 2~3단으로 쌓아 올려 만들었다. 바닥면에는 크고 작은 판돌이나 깬돌을 깔아 주검 받침(屍牀)을 마련하였는데 점토면을 다져 시설하거나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도 있다. 무덤의 바닥면 한 쪽에는 대부분 요갱(腰坑)이 시설되어 있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0.65~1.85m, 너비 0.36~1.04m이며, 무덤방은 길이 0.35~1.5m, 너비 0.18~0.83m, 깊이 0.07~0.44m 정도이다. 껴묻거리는 소량에 불과한데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통 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石劍), 대롱옥(管玉), 버들잎 모양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의 무덤 구덩이는 1단과 2단으로 구분된다. 뚜껑돌은 무덤방과 무덤 구덩이 위로 판돌을 1~4단 정도 놓아 시설하였다. 바닥면은 모두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바닥면 한 쪽에는 요갱이 시설되어 있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0.82~1.43m, 너비 0.48~0.78m이며, 무덤방은 길이 0.46~1.41m, 너비 0.26~0.72m, 깊이 0.09~0.48m 정도이다. 껴묻거리는 통자루 간 돌검 1점만이 출토되었다.

명천동 유적은 보령 관창리 유적과 함께 충청 서해안 일대 대형 복합 취락으로 무덤군과 집자리, 구덩이군, 기둥 건물터, 소성 유구, 도랑 등 무덤 공간과 생활 공간, 저장 공간, 생산 공간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대규모 취락의 공간 구획을 살필 수 있다. 한편 역삼동 유형송국리 유형, 덧띠 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가 동일 취락 내 공존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역삼동 유형에 해당하는 33호가 2850±15 BP로 가장 이르며 송국리식 집자리와 구덩이, 소성 유구는 예외 없이 2500~2600 BP 사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역삼동 유형은 기원전 11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8세기 이후 송국리 유형 취락, 덧띠 토기 문화 시기의 집자리가 순차적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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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