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0633: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063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4번째 줄: 24번째 줄:


==이미지==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gallery mode=packed heights=700px>
File:순천_대치리_고인돌군_유구_배치도.jpg
File:순천_대치리_고인돌군_유구_배치도.jpg
</gallery>
</gallery>

2026년 5월 4일 (월) 11:21 기준 최신판


대치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순천 대치리 고인돌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대치리 28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검, 돌살촉, 돌끌, 민무늬 토기, 갈돌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대치리 286 일원에 위치한다. 황전면 선변리에서 회룡리로 이어지는 도로 확·포장구간에 포함되어 1990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섬진강의 지류인 황전천의 작은 지류 주변에 형성된 곡간평지에서 하천을 따라 나있는 도로변에 있었다. 7기의 고인돌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고인돌 사이의 공간에서 덮개돌(上石)을 갖추지 않는 5기의 돌널(石棺)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고인돌 7기 중 6기는 지하식 무덤방을 갖추고 있었으며, 가장 북쪽에 있는 7호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받침돌(支石) 2개가 덮개돌을 받치고 몇 개의 돌들이 덮개돌 외곽을 따라 둘러져 있는 돌 두름형(圍石形)이다. 고인돌의 덮개돌 아래에서 조사된 6기의 무덤방과 덮개돌이 없이 조사된 5기의 무덤방은 하천을 따라 서북-동남 방향으로 축조되었지만 가장 남쪽에 있는 3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장축 방향이 동북-서남이어서 다른 것들과 차이를 보인다. 덮개돌은 괴석형(塊石形)과 판돌형(板石形)으로 구분되지만 위치, 규모, 받침돌, 하부 구조, 부장품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85~2.75m, 너비 1.3~2.3m, 두께 0.3~1.7m 정도이다. 받침돌은 보통 3~4매가 무덤방 주변에 배치되어 있으며 묘역 시설(墓域施設)무덤방 주변에 돌을 1~2겹으로 깔거나 시설하지 않았다. 1·2호 고인돌의 무덤방과 A·B호 돌널에서는 3~4매의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은 대부분 길이 1.4~1.8m, 너비 0.4~0.57m, 깊이 0.2~0.47m 내외로 평면 원형의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그 안에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지만, 가장 남쪽에 있는 3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판돌(板石)로 축조하였다. 바닥은 판돌을 깐 것과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있다.

출토 유물은 돌검(石劍), 돌살촉(石鏃), 돌끌(石鑿), 민무늬 토기 편이 있고 고인돌 주변에서 갈돌(石棒), 민무늬 토기 편과 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편이 수습되었다. 빗살무늬 토기 편은 고인돌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돌검은 슴베식(有莖式) 3점과 자루식(有柄式) 1점인데, 덮개돌 없는 돌널에서 출토된 것은 A1호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인돌에서 출토되었다. 무덤방 안에서 출토된 것은 6호 고인돌 출토품뿐이고 나머지 3점은 무덤 구덩이와 무덤방 벽석 사이에서 출토되었다.

대치리 고인돌군은 보성강 유역권 고인돌의 변두리에 해당하며 하부 구조는 원형 무덤 구덩이에 간단한 무덤방을 만들었고 묘역 시설은 간략화되거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지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0년 승주 대치리 지석묘군 1991 전남대학교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