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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연암동 환호 유적(蔚山 蓮岩洞環濠遺蹟)
| 이칭별칭=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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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수홍
| 집필자=이수홍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환호
| 크기=41,534㎡
|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산110-16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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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3년~2004년 || 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 || 2006 || 경남문화재연구원
| 발굴조사 || 2003년~2004년 || 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 || 2006 || 경남문화재연구원

2026년 1월 20일 (화) 05:37 판


연암동 환호 유적(蔚山 蓮岩洞環濠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산110-1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환호
키워드 환호, 민무늬 토기, 그물추, 간 돌살촉, 반달돌칼, 가락바퀴, 송국리 단계, 검단리 단계, 흔암리식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산110-16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 산업로 배면도로 연암 IC 건설로 2003~2004년 조사하여, 2열의 환호(環濠)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무룡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한다. 유적에서 북쪽으로 4㎞ 떨어져 창평동 환호 유적이 위치하며, 이외에도 검단리 유적, 명산리 유적, 천상리 유적, 교동리 유적, 창평동 유적, 발리 유적 등에서 청동기 시대 환호가 조사되어 전국에서 환호가 가장 많이 확인된 지역이다.

환호는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2중으로 설치되었다. 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우며, 남-북 축이 동-서 축에 비해 길다. 외호와 내호는 약 8~10m 떨어져 있다. 규모는 내호 긴 축 93m, 짧은 축이 76m, 둘레 260m, 너비 5.5~8.5m, 깊이 1.5~3.7m이다. 외호는 긴 축 125m, 짧은 축 105m, 둘레는 360m, 너비 5.5~8m, 깊이 1.4~2.8m, 외호 내부의 넓이는 12,460㎡이다. 현재까지 조사된 환호 중 지름과 둘레의 길이가 최대이다. 단면 형태는 내호와 외호 모두 ‘V’자 모양이다. 내호에서는 최소 2회에서 최대 5회, 외호에서는 최대 2회의 수축 과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호 내부 매몰토는 대부분의 토층이 경사지게 퇴적되었고, 비교적 작은 입자로 구성된 퇴적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자연퇴적된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인원이 동원된 토목 공사의 결과로 설치되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수축 흔으로 볼 때 환호 설치 후 일정 기간 방치되었다가 다시 환호를 사용할 때 굴착한 흔적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구릉 아래쪽인 서쪽 부분과 위쪽인 북쪽 부분에는 출입구가 있다. 출입구는 환호를 굴착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출입구의 너비는 서쪽 부분의 경우 외호 2m, 내호 0.7m, 동쪽 부분은 외호 4.5m, 내호 0.6m이다. 내호에서 한 곳, 외호 한 곳에서 육교부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규모는 너비 1m 미만이다. 육교로 이용되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환호에서는 민무늬 토기 바닥 편, 꼭지 손잡이가 붙은 몸통 편, 그물추, 간 돌살촉, 반달돌칼 편 등이 출토되었다.

환호 내부 정중앙에서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형태는 장방형이며, 길이 5m, 너비 3.9m, 깊이 0.3m이다. 내부에 벽 도랑(壁溝)이 설치되었으며 화덕 자리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았다.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바닥 편 등의 토기류와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환호의 시기는 송국리·검단리 단계, 집자리는 그 이전에 해당하는 흔암리식 토기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보고자는 집자리와 환호를 같은 시기로 파악하였으나 토기의 무늬를 감안한다면 집자리의 시기가 이를 가능성이 있다. 환호가 처음 조사되었을 때는 그 성격에 대해 방어 시설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점차 방어 시설보다는 의례 시설 또는 의례 공간을 구획하는 시설로 보는 견해가 많아지고 있다. 환호 내에서 확인되는 집자리의 숫자가 적고 식수원이 없으며 의도적으로 굴착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 근거이다. 특히 방어 시설로 보기에는 내부에 집자리의 숫자가 적은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인접하여 위치하는 창평동 환호 유적의 경우에도 동일한 양상이다. 최근에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소도(蘇塗)라는 견해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울산의 진산을 무룡산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연암동 환호 유적 동쪽의 무룡산일 가능성이 높다. 진산은 나라의 도읍과 고을을 진호하며 마을 주민들이 조상신이 깃든 산으로 생각하고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를 지냈던 산이다.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서 의례 활동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에서 조사된 환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환호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3년~2004년 울산 연암동 환호 유적 2006 경남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