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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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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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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알 구멍[性穴]
| 이칭별칭=성혈, 홈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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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여수 오림동 고인돌군
| 키워드=[[바위그림]]
| 키워드=[[바위그림]]
|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집필자=윤호필
| 관련 유적=보성 동촌리 고인돌군, 여수 오림동 고인돌군
| 성격=유적
| 관련 개념=바위그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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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6 판


알 구멍[性穴]
기본 정보
동의어 성혈, 홈 구멍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여수 오림동 고인돌군
키워드 바위그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윤호필



설명

알구멍(性穴, cup-mark)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서 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주로 고인돌덮개돌(上石)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진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알바위’, ‘알터’, ‘알미’, ‘알뫼’ 등으로도 불린다.

알 구멍이 새겨진 바위는 대체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후대에 계속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조성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성 동촌리 고인돌처럼 땅속에 묻힌 하부 구조에서 알 구멍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졌음은 분명하다. 청동기 시대에는 이러한 알 구멍 바위그림(岩刻畵) 이외에 전남 여수 오림동 고인돌처럼 사람과 돌검이 새겨진 물상 바위그림(物像岩刻畵)이나 알 구멍과 함께 새겨진 기학학적 바위그림도 확인되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바위그림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알 구멍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확인되는 선사 시대의 보편적인 바위그림의 형태이다. 유럽에서 알 구멍은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며,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많이 확인되고 폭넓은 제작 시기를 가지는 것은 그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이 당시의 신앙 의식을 가장 잘 반영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선사 시대의 가장 큰 신앙 의식은 생존을 위한 기원(祈願)으로, 신변 안전이나 식량 확보를 위한 개체 보존과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종족 보존이 주된 형태였을 것이다. 이러한 기원의 형태는 선사 시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로 표출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알 구멍으로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알 구멍의 의미는 주로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 그리고 만들어진 곳의 입지를 통해 추론된다. 형태는 주로 원형으로 태양, 여성의 성기, 알, 구멍 등으로 상징되며, 돌 표면을 쪼아서 형태를 잡은 다음 회전마찰을 통해 다듬었다. 모방 주술(imitative magic) 의식을 통해 ‘구멍-여성의 성기-마찰-생산’으로 이어지는 기자 신앙(祈子信仰)적 형태와 ‘구멍-알-곡식-생산’으로 이어지는 풍요의 형태로 인식되어진다. 이 모두는 당시 생존을 위하여 가장 큰 기원인 생산이라는 형태로 귀결되는 바, 청동기 시대에 활발히 전개되는 농경의 발달이 인구의 증가와 동시에 많은 생산량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된다. 알 구멍은 농경 사회에서 다산(多産)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적 의식의 표현으로 생각되는 바, 알 구멍 유적의 입지도 마을의 상징적 경관에 위치함으로써 그 자체가 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관련된 의례가 성스러운 행위로써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알 구멍 관련 의식이 현재까지도 신앙 의식으로 인식되어 일종의 놀이로서 행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 삶을 풍요롭게 생존하고자 하는 정신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