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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천동 냉천 유적(蔚山 新泉洞冷泉遺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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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6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울산 신천동 냉천 유적, 울산 신천동 공원 부지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114-5, 530-1, 799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도랑, 논, 둘레 도랑, 검단리식 집자리, 연암동식 집자리,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그물추, 간 돌검,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 홈자귀, 돌대팻날, 돌끌, 간 돌살촉, 가락바퀴, 민무늬 토기, 돌도끼, 돌 구슬, 흔암리식 토기, 검단리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수홍 |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114-5, 530-1, 799 일원에 위치한다. 아파트와 학교, 진입로 개설로에 대해 2005~2006·2007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신천동 냉천 유적(신천동 530-1)은 동쪽의 동대산(해발 443m)에서 서쪽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입지하며, 세 개의 구릉과 그 사이 계곡부에 위치한다. 서쪽 구릉부터 Ⅰ~Ⅲ지구, Ⅱ지구와 Ⅲ지구 사이의 구릉 사면과 계곡부를 Ⅳ지구로 명명하였다. 냉천 유적Ⅱ(신천동 799)는 동쪽에 위치하는 두 개의 구릉을 가지구와 나지구로 구분하였다. Ⅰ지구의 북쪽 능선부에는 신천동 공원 부지 유적이 위치한다. Ⅰ~Ⅳ지구(냉천 유적)에서는 집자리 45기, 도랑(溝) 5기, 논, 가·나지구(냉천 유적Ⅱ)에서는 집자리 40기가 조사되었다. 그 외 삼국 시대 경작층, 조선 시대 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신천동 공원 부지 유적(신천동 114-5)은 시굴 조사 후 아파트 건립 부지 내 보존 지역으로 결정되었으나, 민원 등으로 2007년 조사하여 집자리 12기, 둘레 도랑(周溝)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서쪽에서 뻗어 내린 여러 갈래의 구릉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울산 신천동 냉천 유적 Ⅰ지구가 인접하여 위치한다.
냉천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장축 방향이 등고선에 직교하는 것과 평행하는 것으로 구분되지만, 시기 차이는 확인되지 않는다. Ⅰ-3·6호, Ⅱ-4·6·11·12호, Ⅲ-1·6·13, 가-9·12호, 나-5·6호 집자리는 35㎡ 이상의 대형으로, 울산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큰 집자리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형 집자리의 형태는 대부분 세장방형이 일반적이지만, Ⅰ-6호, Ⅱ-6호, Ⅲ-1·6·13호는 장방형이다. 대형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孔列土器)가 출토되어 시기가 이를 가능성이 있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단장비가 1:2 이상으로, 화덕 자리가 2개 이상 설치된 것이 많다. 출토 토기의 무늬는 대형 집자리에서 확인된 토기와 유사하다. 중·소형에 해당하는 장방형 집자리는 1개의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배수구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Ⅲ-19호는 집자리 외곽에 둘레 도랑이 설치된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이 집자리의 성격에 대해서 최근 집자리가 무덤으로 전용된 것이며, 둘레 도랑은 무덤의 묘역을 구획한 용도라는 견해가 있다. 화덕 자리는 바닥을 얕게 굴착한 구덩식과 바닥에서 바로 불을 이용한 평지식으로 구분된다. Ⅲ-6호는 길이 1m의 대형 화덕 자리가 설치되었다. 이는 동천 변의 집자리에서 많이 확인되는 형태로, 대형 어종을 처리하기 위한 용도라는 견해가 있다. 벽 도랑은 내부에 작은 구덩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벽 도랑 내 작은 구덩이는 기둥을 세우는 용도가 아니라 벽 마감재를 벽에 붙여 설치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배수구는 집자리의 상태가 양호한 경우에는 모두 확인되었기 때문에 집 축조 당시에는 모든 집자리에 배수구가 있었을 것이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그물추, 간 돌검,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홈자귀(有溝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石鑿), 간 돌살촉,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논은 Ⅱ·Ⅲ지구 사이에 형성된 곡간 충적지인 Ⅳ지구에서 확인되었다. 구릉 사면의 경사를 따라 계단상으로 조성되었다. 조사된 논면의 면적은 120㎡이다. 회흑갈색 점토층에 논면이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되었다. 논면은 모두 11면이 확인되었다. 논 한면의 너비는 1m, 논면 간의 단차는 5㎝ 내외이다. 이런 형태의 계단식 논은 단(段) 구획 논이라고하며, 남구 야음동·동구 화정동 유적 등 울산 지역에서 조사된 예가 많다. 논에 필수적인 구조인 논둑이 확인되지 않아서 논으로 이용되다가 밭으로 전용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논 층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 돌도끼, 돌 구슬(石球)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삼국 시대 경작층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경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시기는 규모가 큰 대형의 집자리와 세장방형 집자리가 흔암리 단계에 해당되고 중·소형의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형 집자리 중 일부는 늦은 시기의 유력 개인의 집자리일 가능성이 있고, 중·소형의 방형·장방형 집자리 중에서도 흔암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되는 것도 있다. 유적과 인접한 주변 유적을 통해 이 일대에는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신천동 공원 부지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3호는 세장방형이며, 길이 8.2m, 너비 3.8m로 대형이다. 내부에는 화덕 자리 2개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 11기는 모두 화덕 자리가 1개 설치되었고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배수구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11기의 집자리에서는 검단리식 토기로 알려진 낟알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의 토기류,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둘레 도랑 1기는 연암동식 집자리의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이다. 9호 집자리의 외곽에 위치하는데, 배치 상태로 볼 때 9호 집자리와 무관한 독립된 유구로 추정되며,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도랑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 유적의 시기는 3호 집자리는 흔암리·역삼동식 토기 단계, 그 외의 집자리와 둘레 도랑은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된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시굴조사 | 2004년 7월 9일~2004년 8월 31일 | 울산 신천동 공원부지유적 | 2007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7년 6월 7일~2007년 7월 6일 | 울산 신천동 공원부지유적 | 2007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시굴조사 | 2005년 9월 23일~2005년 12월 20일 | 울산 신천동 냉천유적 | 2008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6년 2월 1일~2006년 4월 20일 | 울산 신천동 냉천유적 | 2008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시굴조사 | 2007년 1월 26일~2007년 2월 28일 | 울산 신천동 냉천유적 Ⅱ | 2008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7년 4월 4일~2007년 8월 3일 | 울산 신천동 냉천유적 Ⅱ | 2008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