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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6 판


신송리 유적(瑞山 新松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서산 신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757-1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반송리식 집자리, 휴암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나건주



설명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757-11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 29호선 갈산-해미 간 도로 확·포장 공사 앞서 2008년 발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17기와 구덩이 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가야산 산지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봉화산지 서쪽 말단의 완만한 구릉 능선부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가야산에서 남쪽으로 연속된 대규모의 험준한 산지가 자리하며, 북쪽과 서쪽, 남서쪽 일대는 넓은 해안 저지대 주변으로 낮은 구릉 지대가 발달되어 있다.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 일대는 산지와 소하천 및 해안가 주변의 여러 천연 자원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 매우 유리한 지역이다.

조사된 17기의 집자리는 평지식 또는 구덩식 화덕이 설치된 장방형 7기와 2주식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반송리식, 휴암리식으로 분류되는 방형 10기가 있다. 장방형 집자리는 대체로 구릉 정상의 능선부와 정상과 인접한 완사면 지대에 위치한다. 이에 반해 방형 집자리는 사면부에 위치한다.

서산 지역은 동쪽의 당진과 함께 아산만 일대의 청동기 시대 구멍무늬 토기 문화 권역에 포함되는 곳이다. 이 시기에 성행하는 장방형 집자리는 장축이 길고 4~8개 정도의 화덕이 설치된다. 신송리의 경우 장축의 길이 가 길지 않고 화덕의 수도 1개 내지 2개에 불과하여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출토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구멍무늬 토기의 출토 빈도가 현저하게 낮은데 4호에서 2점이 출토되었으며 나머지 집자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외에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사발 모양 토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방형 집자리와 동일한 양상이다. 석기류에서도 슴베 없는 돌살촉, 배 모양 돌칼, 통슴베 돌살촉, 홈자귀, 삼각 돌칼 등이 출토되어 대체로 송국리 유형의 석기상을 보여준다. 방형 집자리와 중복되지 않는 등 전체적인 유구 배치 양상으로 보아 유적 내에서 두 주거 유형 사이에 시기차가 크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10기의 방형 집자리는 타원 형구덩이와 2주식 기둥 구멍이 설치된 휴암리식이 다수를 차지하며, 이 외에 2주식 기둥 구멍만 있거나 2주식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가 분리되어 설치된 사례도 확인된다. 연구자에 따라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가 분리되어 설치된 구조를 반송리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반송리식인 1호와 2호는 출토 유물이 빈약하지만 통슴베 돌살촉이 공반되는 것으로 보아 휴암리식과 큰 시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휴암리식 집자리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 사발 모양 토기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석기류의 경우 슴베 없는 돌살촉, 통슴베 돌살촉,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홈자귀, 돌대팻날 등이 출토되었다. 휴암리식에서 출토된 통슴베 돌살촉의 몸통 하단의 형태를 보면 뚜렷하게 각이 지는 것과 전체적으로 버들잎 모양을 띠는 형식의 출토 빈도가 높다. 이러한 형식의 돌살촉은 장방형 집자리와 반송리식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송리 유적에서는 송국리식 원형 집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신송리 취락은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구멍무늬 토기 문화와 송국리 유형 사이의 과도기적인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신송리 유적에서는 석기 생산에 필요한 점판암 원석과 반제품, 부산물인 격지과 제작 도구 등 석기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보아 유적 내에서 자체적으로 석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산지 분석 결과, 유적 동쪽 배후에 위치하는 봉화산 일대가 흑색 셰일~점판암 산지임이 확인되었다. 지표에 드러난 점판암을 20~25cm 정도 장방형 판상으로 채취하여 운반한 후 취락 내에서 석기를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