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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석장동 유적(慶州 錫杖洞遺蹟) | |||
| 이칭별칭=경주 석장동 유적 | | 이칭별칭=경주 석장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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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안재호, 이도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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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5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석장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석장동 707, 774-8, 824, 875-1, 876-5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화덕 자리, 구멍무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검단리 문화 시기, 도랑, 조갯날 돌도끼, 묘역식 고인돌, 송국리 문화 단계, 거점취락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안재호, 이도현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석장동 707, 774-8, 824, 875-1, 876-5에 위치한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신축에 앞서 석장동 707 일원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1993·1995·1997·1999·2000년에 조사하여 집자리 11기를 확인하였으며, 이후 석장동 유적으로 명명되었다(석장동 유적Ⅰ~Ⅲ). 이후, 다가구주택 신축에 앞서 2005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875-1 유적), 2010년·2011년 계림문화재연구원(876-5 유적, 774-8 유적), 2015년 한국문화재연구원(824 유적)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천이 형산강에 합류하는 곳의 서쪽 건너 편 구릉에 입지하며, 큰갓산과 옥녀봉 사이에서 뻗어 내려오는 협곡과 번데기들이 만나는 구릉 말단부에 입지한다. 유적은 반경 200m 거리에 분포한다. 주변 유적으로는, 석장동 고인돌군, 금장리 민무늬 토기 유적, 석장동 바위그림 유적이 있다.
석장동 유적Ⅰ~Ⅲ의 집자리는 형산강에 인접한 금장대, 온방골의 동쪽 구릉지(1지구)와 서쪽 사면부(2지구)에 위치한다. 1지구는 2개 구역으로 분리되어 조사되었는데, 집자리 10기(1·3호~11호)와 구덩이 1기(2호)가 확인되었다. 집자리가 서로 겹쳐져 있는 예도 있어 취락의 존속 시기가 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형 4기(1·7·10·11호), 장방형 6기(2·3·5·6·8·9호), 세장방형 1기(4호)로 구분할 수 있다. 3호는 길이 5.2m, 너비 3.3m, 깊이 0.72m, 4호는 길이 12m, 너비 4.6m, 깊이 0.76m이며, 면적은 13.5㎡ 전후의 소형 집자리(3·6호), 50~55㎡의 대형 집자리(4·9호)가 있다. 화덕 자리는 모두 구덩식으로,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2기, 장방형인 4호는 5호와 겹쳐 있고 경사면으로 일부 결실되어 1기만 확인되었으나 2기 이상으로 추정된다. 기둥 구멍은 장방형에서 4주식(柱式)와 6주식이 보이지만, 대부분 정형성을 찾을 수 없다. 벽 도랑(壁溝)은 경사면의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 돋을무늬 토기(突乳文土器),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가로줄무늬(橫線文)에 손잡이(把手)가 부착된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이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슴베가 편평한(坪根式)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있다. 집자리와 유물을 통해 검단리 문화 시기와 그 직전 시기에 해당된다.
2지구에서는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이전 조사에서 환호(還壕)가 확인되었다고 소개되었으나, 1999년 조사 결과 환호가 아니라 계곡의 자연 유로임을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3.1m, 너비 2m의 소형으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홈자귀(有溝石斧)와 목이 약간 외반(外反) 하는 항아리 모양 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계곡부에서는 매부리형 석기 2점이 수습되었다.
석장동 875-1 유적은 집자리 5기, 도랑(溝) 1기, 기둥 구멍 3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중 상태가 양호한 3기는 방형이며, 길이 2.8~3.5m, 너비 2.9~3m, 깊이 0.18m, 면적 10㎡ 이하의 소형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으며, 3호에서 다량이 목탄을 통해 벽체 시설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출토 유물은 1호에서 아가리에 낟알문을 시문한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등이 확인되었다. 도랑은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집자리를 감싸듯이 조성되어 환호(環濠)의 가능성도 있으나, 일부만 확인되어 성격은 알 수 없다.
석장동 876-5 유적은 묘역식(墓域式) 고인돌, 석축형 돌널무덤 1기, 돌널무덤 1기,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묘역 시설은 해발 38m에 위치한다. 유구는 조사 지역 경계 밖으로 이어지며, 후대에 훼손되어 일부만 확인되었다. 묘역을 따라 석렬(石列)을 설치하였으며, 규모는 동서 방향 34m, 남북 방향 2.8m 확인되었다. 묘역 시설 내 서쪽에 치우쳐 돌널무덤 1기와 화장묘(火葬墓)가 열을 이루며 조성되었다. 묘역 시설과 돌널무덤은 4.4m 정도 떨어져 있다. 돌널은 길이 0.82m, 너비 0.27m이다. 출토 유물은 북쪽 채움 돌 아래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 돌끌(石鑿) 1점이 확인되었다. 화장묘는 돌널무덤에서 서쪽으로 2.4m 떨어져 위치한다. 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2.16m, 너비 1.75m이다. 벽면에 불탄 흔적과 목탄 위에서 3개체의 사람 뼈 편이 확인되었다. 석축형 돌널무덤은 길이 1.5m, 너비 1.1m, 깊이 0.33m이며, 바닥 면은 그대로를 사용하였다. 유물은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 1점만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주축 방향이 동-서향이며,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규모는 길이 1.4m, 너비 0.32m, 깊이 0.2m이다.
석장동 774-8 유적은 집자리 1기, 구덩이 1기, 도랑 2기, 기둥 구멍 2개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대부분이 훼손되었으며, 도랑 2호는 연암동식 도랑과 유사하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석장동 824 유적은 집자리 2기, 도랑 3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2.62~3.42m, 너비 2.14~2.74m, 깊이 0.19~0.23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도랑이 확인되었다. 도랑 3호는 석장동 774-8 유적의 도랑과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대규모 취락과 무덤이 확인되어, 전체가 하나의 취락 공동체인 청동기 시대 송국리 문화 단계의 거점취락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 문화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국고고학저널
- "경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초대형 구획묘와 화장묘", 2010 한국고고학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