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1273: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127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1273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사곡리 유적(晋州 沙谷里遺蹟) | |||
| 이칭별칭=진주 사곡리 유적 | | 이칭별칭=진주 사곡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1845-7 일원 | |||
| 성격=복합유적 | |||
| 키워드=[[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가락바퀴]], [[돌도끼]], [[돌대팻날]],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골아가리 토기]], [[달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대롱옥]], [[붉은 간 토기]] | | 키워드=[[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가락바퀴]], [[돌도끼]], [[돌대팻날]],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골아가리 토기]], [[달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대롱옥]], [[붉은 간 토기]]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송영진 | | 집필자=송영진 | ||
}} | }} | ||
| 27번째 줄: | 27번째 줄: | ||
==조사정보== | ==조사정보== | ||
{|class="listtable" | {|class="listtable" | ||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 |- | ||
| 1차 시굴조사 || 2011년 9월 29일~2012년 9월 28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 | 1차 시굴조사 || 2011년 9월 29일~2012년 9월 28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 ||
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진주 사곡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1845-7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가락바퀴, 돌도끼, 돌대팻날,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골아가리 토기, 달도끼,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대롱옥, 붉은 간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송영진 |
설명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1845-7 일원에 위치한다. 진주 사봉 지방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7~2008년, 2010·2012·2013년 3차례 조사되었다. 1차 조사에서 돌널무덤(石棺墓) 3기, 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1기, 2차 조사에서는 집자리 2기, 돌널무덤 2기, 3차 조사에서 집자리 18기와 돌널무덤 17기, 구덩이 20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반성천으로 유입되는 대천(大川)의 남쪽 구릉 경사면과 골짜기에 위치한다.
1차 조사에서 확인된 돌널무덤은 여러 매의 판돌(板石)을 이용하여 ‘ㅍ’자 모양으로 축조하였다. 2호는 벽석 바깥에 넓은 판돌을 평평하게 덧붙여 보강하였다. 덮개돌(蓋石)은 1매만 확인되었다. 3호는 벽석과 무덤 구덩이(墓壙) 사이에 다량을 석재를 채워 보강하였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돌뚜껑움무덤은 1·2호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에서 가락바퀴와 돌도끼(石斧) 등이 확인되었다.
2차 조사의 1호 집자리는 원형으로 길이 5.1m이다. 내부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바깥쪽 양 측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었다. 유물은 가락바퀴,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2호는 1호 집자리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한쪽 벽에 치우쳐 2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15m, 남동쪽으로 약 20m 떨어져 돌널무덤이 위치한다. 축조 방식은 1차 조사에서 확인된 돌널무덤과 동일하다. 돌널무덤 2호의 바닥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이 각 1점씩 출토되었다.
3차 조사에서는 구릉 정상부와 경사면을 따라 다량의 유구가 분포한다. 집자리는 경사면에 축조되어 훼손된 상태이다. 집자리는 장방형(1·2·4·11호), 방형(3·7·13·16호), 원형(5·6·8~10·12·14·15·17·18호)으로 구분된다. 1호에서는 굽다리(臺却),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11호는 달도끼(環狀石斧)가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형태와 유물을 통해 장방형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역삼동·흔암리식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방형, 원형 집자리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바깥 양 측에 기둥 구멍이 설치되었다. 16호 상부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文土器)가 수습되었고,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무늬 토기이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과 숫돌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원형도 일부 확인된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골아가리 토기 편, 돌도끼, 숫돌,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구릉 정상부에 2기와 남서쪽 경사면에 다수 분포한다. 모두 돌널무덤으로 1매 또는 여러 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무덤 중 4·8·11·14·15호는 길이가 1m 내외로 소형이다. 2호에서는 옆으로 누워 팔과 다리를 접은 사람뼈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5호 집자리에서 길이 36.4㎝의 통자루 간 돌검, 7호 무덤에서는 간 돌살촉이 2점 출토되었다. 12호 무덤에서는 대롱옥(管玉)이 1점, 14호 무덤에서는 돌널 바깥쪽 별도의 공간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16호 무덤에서는 동쪽 벽가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남쪽 벽 중앙에서 통자루 간 돌검 1점과 간 돌살촉 1점이 각각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역삼동·흔암리식 단계부터 송국리 단계까지 비교적 장기간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1차 시굴조사 | 2011년 9월 29일~2012년 9월 28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
| 2차 시굴조사 | 2013년 3월 6일~2013년 4월 8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
| 1차 발굴조사 | 2012년 3월 5일~2012년 9월 20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
| 2차 발굴조사 | 2013년 3월 6일~2013년 3월 8일 | 진주 사곡리유적Ⅲ | 2017 | 동서문물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