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4404: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440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440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2번째 줄: 22번째 줄: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목탄의 분석을 통해 3025±90 BP라는 값을 얻었다. 보고자는 닝안시의 다무단(大牧丹), [[뉴창유적|뉴창 유적(牛場遗址)]]과 문화상이 비슷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조영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집자리와 토기의 특징을 통해 무단강 유역의 [[둥캉문화|둥캉 문화(東康文化)]]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목탄의 분석을 통해 3025±90 BP라는 값을 얻었다. 보고자는 닝안시의 다무단(大牧丹), [[뉴창유적|뉴창 유적(牛場遗址)]]과 문화상이 비슷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조영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집자리와 토기의 특징을 통해 무단강 유역의 [[둥캉문화|둥캉 문화(東康文化)]]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참고문헌==
* 王辉. (1981). 黑龙江考古文物图鉴. <i>考古, 6</i>. https://xueshu.baidu.com/usercenter/paper/show?paperid=9f3afbe6f1435be88378fc1c92e76c5c
* 黑龙江省文物考古工作队. (1981). 黑龙江宁安县莺歌岭遗址. <i>考古, 6</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30 기준 최신판


잉거링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닝안 잉거링 유적, 영안 앵가령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시(牡丹江市) 닝안시(寧安市) 징포향(鏡泊鄕)의 징포호(鏡泊湖) 남단 동쪽 단애상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무문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재윤



설명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시(牡丹江市) 닝안시(寧安市) 징포향(鏡泊鄕)의 징포호(鏡泊湖) 남단 동쪽 단애상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칭펑촌(慶豊村), 서쪽으로 후난촌(湖南村)이 위치한다. 유적은 동쪽 쑹이강(松乙河)과 서쪽 팡선강(房身河)이 징포호로 유입되는 중간 지점에 입지한다. 1958년 문물 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어, 1963년 헤이룽장성박물관(黑龍江省博物館)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2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하층은 신석기 시대, 상층은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 에 해당된다.

상층에서는 집자리 2기 및 구덩이(灰坑)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 또는 방형의 반지하식이다. 1호 집자리는 서쪽 벽 전체와 북쪽과 남쪽 벽 일부가 훼손되었다. 규모는 동쪽 벽의 경우 길이 5.4m, 남쪽과 북쪽 벽은 길이 1m이다. 벽체의 높이는 약 1m 내외로 동쪽 벽체가 가장 잘 남아 있다. 벽체는 모두 돌로 쌓고 있으며, 돌 틈은 황토로 메웠다. 바닥면은 진흙으로 다지고 사용한다. 동쪽 벽체와 그 안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기둥 구멍이 2열 확인되었다. 동벽에 인접하여 10개, 0.5m 안쪽으로 8개가 배치되어 있다. 일부 기둥 구멍 안에는 불에 탄 목재가 세워져 있다. 집자리 내부에서 많은 양의 목탄이 발견되는데, 화재로 인해 지붕을 지탱하던 가구(架構)가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닥에 깔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자작나무 껍질이 남아 있다. 1호 집자리 동쪽으로 1.6m 떨어져 타원형의 화덕 자리 1곳이 위치한다. 이 주변으로 불에 탄 돌들과 짐승 뼈, 토기 편 등이 흩어져 있어 여름에 야외에서 임시로 사용하던 화덕으로 추정된다. 2호 집자리도 1호와 평면형태 및 구조가 비슷하다. 동벽과 남벽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동벽은 흙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남벽은 돌로 쌓고 있으며, 바닥면은 특수한 가공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집자리 안에서 모두 4열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는데 동벽에 2열, 남벽에 2열이 배치되어 있다. 2호 집자리 내부 역시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목재 가구가 남북 방향으로 넘어져 있다. 구덩이는 주머니형태로 둥근 바닥을 이루고 있으며, 내부에서 다량의 토기 편과 석기, 골각기 등과 개·돼지 등의 동물 모양 흙 인형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 석기, 골각기, 조개껍질 도구 등이 있다. 토기는 태토에 모래가 혼입된 흑회색 계통의 무문 토기관(罐)이 가장 많고, 완(碗), 잔(杯), 충(盅) 등이 있다. 관은 구연부 윗부분에 점토띠를 두르고 그 위에 누름문이 장식되어 있다. 석기는 갈아 만든 석기와 더불어 흑요석제 떼어낸 석기도 다수 발견되고 있어 특징적이다. 종류로는 석부, 석산(石錛), 석창(石槍), 석촉 등이 있다. 흑요석제 촉 및 추형 석기(錐形石器)는 눌러떼기 하였다. 촉은 무경식(無莖式)이며, 단면은 육각형에 가깝다. 골각기는 침(針), 추(錐), 잠(簪), 비수, 착(鑿), 등이 있으며, 조개 껍질로 제작된 반달 모양의 칼도 함께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출토된 목탄의 분석을 통해 3025±90 BP라는 값을 얻었다. 보고자는 닝안시의 다무단(大牧丹), 뉴창 유적(牛場遗址)과 문화상이 비슷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조영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집자리와 토기의 특징을 통해 무단강 유역의 둥캉 문화(東康文化)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