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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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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약 100,000㎡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회화 토기의 누각은 복원하였다. 2018년에는 환호와 대형 굴립주 건물을 일부를 복원하여 사적 공원을 만들었다.
1999년 약 100,000㎡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회화 토기의 누각은 복원하였다. 2018년에는 환호와 대형 굴립주 건물을 일부를 복원하여 사적 공원을 만들었다.
==참고문헌==
* 同成社. (2012). <i>唐古·鍵遺跡</i>.  https://cir.nii.ac.jp/crid/1130282269393412480
* 新泉社. (2019). <i>ヤマト王権誕生の礎となったムラ唐古·鍵遺跡</i>.  https://cir.nii.ac.jp/crid/1130000795928095488
* 田原本町教育委員会. (2009). <i>唐古·鍵遺跡Ⅰ</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8 기준 최신판


가라코·가기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시키 가라코·가기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나라현(奈良県) 시키군(磯城郡) 다와라모토정(田原本町)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야요이 시대, 환호 취락, 가래, 괭이, 야요이 토기, 굴립주 건물, 널무덤, 독무덤, 환호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임지영



설명

국가 사적. 일본 나라현(奈良県) 시키군(磯城郡) 다와라모토정(田原本町)에 위치한다. 나라분지 중앙의 해발 약 50m의 충적지에 입지하는 야요이 시대의 대표적인 환호 취락 유적이다. 최전성기의 규모는 약 420,000㎡로 긴키 지역의 거점 취락이다.

가라코·가기 유적은 인물, 사슴 등의 회화 토기 및 석기가 확인되어 메이지 시대부터 알려졌다. 1901년 다카하시 겐지(高橋健自)가 최초로 보고하였고, 도리이 류죠(鳥居龍蔵), 모리모토 로쿠지(森本六爾), 스에나가 마사오(末永雅雄) 등이 시굴 및 발굴 조사에 참가하였다. 1936년 국도 건설용 채토를 위해 교토대학(京都大学)과 나라현이 가라코이케(唐古池)를 본격적으로 조사하였다. 가라코이케는 나라현과 가시하라시를 연결하는 국도 24호선 동쪽에 위치한 에도 시대의 농업 용수지에 해당한다. 조사 결과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가래괭이 등의 농구, 용기 등의 목기와 함께 다량의 야요이 토기, 석기, 뼈연장, 탄화미 등이 구덩이(竪穴)저장 구덩이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유적의 범위 확인 및 개발로 2015년까지 총 116차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다중 환호, 굴립주 건물(堀立柱建物), 사람 뼈가 확인된 널무덤(木棺墓), 독무덤(甕棺墓), 우물, 교각 등의 유구와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어 야요이 시대를 종합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유적의 시기별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조몬 시대 만기는 유물만 일부 확인되었다. 야요이 시대 전기에는 유적의 서쪽과 북쪽, 남쪽 미고지(微高地) 위에 소규모 취락이 형성되고, 전기 후반에는 각각의 취락을 둘러싸는 큰 도랑이 형성되었다. 중기에는 각 주거역을 둘러싸는 약 10m 폭의 거대 환호가 출현한다. 이 환호 외측에는 3~5조의 환호가 돌아가며, 폭은 150~200m이다. 대규모 다중 환호는 저지대에 입지한 마을의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운하 기능과 취락 주변으로 물을 우회시키기 위한 배수 기능도 담당한다. 서쪽 지구에는 대형 건물지, 남쪽 지구에는 청동기의 공방, 환호의 외측에는 방형 도랑무덤(周溝墓)이 위치하고 있어, 묘역과 취락 등의 공간이 구획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서쪽 지구의 대형 건물은 바닥 면적이 80㎡이고, 지름 0.8m의 느티나무 기둥이 남아 있어, 수장 거관(居館)·신전·창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석기와 목기의 미완성품도 다수 확인되어 생산 활동이 행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중기 전엽에는 취락의 규모가 최대로 확대되며, 대환호의 범위는 길이 530m, 너비 400m로 추정된다. 집자리 1기에 살았던 사람 수를 추정하는 방법과 환호 취락의 면적 비교를 통해 인구를 추정해 보면, 유적 면적이 18㏊인 경우 900명(2㏊당 100명 전후)으로 동시기 일본 내 최대급 취락이라 할 수 있다.

야요이 시대 중기 말에는 홍수에 의해 환호가 매몰되었다가 다시 팠으며, 후기의 마을은 다시 환호로 둘러쌌다. 하지만 후기 후반이 되면 지금까지 환호 밖에 위치했던 묘역이 마을 내부에 조영되고, 환호도 매몰된다. 긴키 지역에서는 야요이 시대 중기 말에 환호 취락이 쇠퇴하는데 반해, 가라코·가기 유적에서는 후기까지 취락이 존속한다.

출토 유물은 항아리(壺), 독(甕)), 바리(鉢), 굽다리 접시(高杯)가 세트를 이루며 누각이나 고사리 문양, 뿔 없는 사슴, 방패나 꺾창(戈)을 든 사람 등을 그린 200점 이상의 회화 토기(繪畫土器)와 타 지역에서 제작된 반입 토기(搬入土器)도 확인된다. 동쪽은 도토미[遠江(現 시즈오카현)], 시나노[信濃(現 나가노현)], 서쪽은 기타규슈의 토기가 출토된다. 야요이 시대 중기에는 미카와[三河(現 아이치현 중부)], 오와리[尾張(現 나고야)], 기비[吉備(現 오카야마현)], 하리마[播磨(現 효고현와)]와 세토나이해(瀬戸内海) 지역의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반입 토기 중에서도 기비의 대형 항아리대형 그릇 받침(器臺)은 제사에서 사용된 공헌용 토기이다. 그 밖에 대형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등의 간 돌도끼 세트와 반달 돌칼, 목제 농경구와 대량의 미완성품, 건축 부재, 청동 투겁창, 청동 살촉, 청동기 토제 거푸집(鋳型), 송풍관, 갈철광(褐鐵鉱) 용기에 들어있는 비취제 곱은옥(曲玉), 간 돌검, 뼈뿔연장, 각골, 연결된 멧돼지 하악골, 분석(糞石), 일본에서 최초로 동정된 닭 뼈 등 다량의 동식물 유체도 확인되었다.

1차 조사에서 확인된 쇠 낫(鐵鎌), 가래, 공이 등의 다종다양한 목제 농경구는 야요이 시대가 수도 농경(水稲農耕)을 하는 사회임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보고서에 제시된 고바야시 유키오(小林行雄)의 토기 편년은 지금의 긴키 지역 야요이 토기 편년의 기초가 되어, 양식론을 대표하는 연구 성과로 인정되어 왔다. 이와 같이 유적은 야요이 시대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기초를 다진 학사적으로도 저명한 유적이다.

1999년 약 100,000㎡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회화 토기의 누각은 복원하였다. 2018년에는 환호와 대형 굴립주 건물을 일부를 복원하여 사적 공원을 만들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