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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리 유적의 집자리에서 나온 [[석기|석기]]와 [[토기|토기]] 갖춤새를 보면 [[금야금야읍유적|금야읍 유적]]을 비롯한 금야강 유역과 남대천 유역 및 량강도 허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문화 양상과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어 ‘[[금야-토성리유형문화|금야-토성리 유형 문화]]’라고 부른다. 집자리 안에서 이렇게 많은 청동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며 특히 동해안 지방에서는 드문 일로 동해안 북부 지방의 청동기 시대 주민들의 문화를 아는데 중요하다.
토성리 유적의 집자리에서 나온 [[석기|석기]]와 [[토기|토기]] 갖춤새를 보면 [[금야금야읍유적|금야읍 유적]]을 비롯한 금야강 유역과 남대천 유역 및 량강도 허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문화 양상과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어 ‘[[금야-토성리유형문화|금야-토성리 유형 문화]]’라고 부른다. 집자리 안에서 이렇게 많은 청동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며 특히 동해안 지방에서는 드문 일로 동해안 북부 지방의 청동기 시대 주민들의 문화를 아는데 중요하다.
==참고문헌==
* 김용간, 안영준. (1986). 함경남도·량강도 일대에서 새로 알려진 청동기시대유물에 대한 고찰. <i>조선고고연구, 1</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24
* 장호수. (1992). <i>북한의 선사고고학 3-청동기 시대와 문화-</i>. 백산문화. https://www.riss.kr/link?id=M102796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토성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북청 토성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관련 정보
성격 집자리
키워드 집자리, 간 돌살촉, 가락바퀴, 검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간 돌검, 돌도끼, 장신구, 청동기, 청동 토시, 금야-토성리 유형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위치한다. 1982년에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2기를 확인하였으며, 2호 집자리에서 청동 유물 20여 점이 나와 매우 주목을 받은 곳이다.

1호 집자리는 길이 5.4m, 너비 4.6m이며 질그릇 깨진 것들과 함께 간 돌살촉, 찔개살,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 흙추(土錘)가 나왔다. 2호는 길이 9m, 너비 6m로 동서 방향으로 길게 놓였고, 바닥에는 네 벽을 따라 가느다란 통나무가 불에 탄 채로 줄지어 서 있고 동남쪽에는 지붕에 얹었던 것으로 보이는 달(갈대와 닮은 풀)이 한 벌 깔려 있었다. 유물은 갈색 간 토기(褐色磨硏土器), 검은 간 토기, 반달 돌칼, 간 돌검, 돌살촉, 돌도끼, 가락바퀴, 그리고 흙추와 장신구가 있다. 특히 서남쪽 구석에 구덩이를 파고 청동기들을 천에 싸서 묻어둔 것이 나왔다. 청동 도끼, 청동 방울(銅鐸), 청동 끌(銅鑿)청동 토시 1쌍이 나왔는데, 토시는 장신구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이다.

토성리 유적의 집자리에서 나온 석기토기 갖춤새를 보면 금야읍 유적을 비롯한 금야강 유역과 남대천 유역 및 량강도 허천강 유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 양상과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어 ‘금야-토성리 유형 문화’라고 부른다. 집자리 안에서 이렇게 많은 청동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며 특히 동해안 지방에서는 드문 일로 동해안 북부 지방의 청동기 시대 주민들의 문화를 아는데 중요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