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104: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10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104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방축리·도이리 유적(華城 防築里·桃李里遺蹟)
| 이칭별칭=화성 방축리·도이리 유적
| 이칭별칭=화성 방축리·도이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 408, 도이리 432-3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덧띠 토기]], [[철기]]
| 키워드=[[집자리]], [[덧띠 토기]], [[철기]]
|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집필자=이형원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 408, 도이리 432-3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방축리·도이리 유적(華城 防築里·桃李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화성 방축리·도이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 408, 도이리 432-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덧띠 토기, 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형원



설명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 408, 도이리 432-3 일원에 위치한다. 2005~2006년에 화성 향남 택지 개발 지구 내 문화재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초기 철기 시대 도랑(溝), 고려~조선 시대 집자리, 건물터, 구덩이, 소성유구(燒成遺構)등을 확인하였다. 이 가운데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지점인 방축리에, 초기 철기 시대 도랑은 6지점인 도이리에 위치한다. 1지점 방축리 유적은 해발 35m의 낮은 구릉 남사면에 청동기 시대 집자리 5기가 자리잡고 있다. 3호 집자리만 주축이 남북 방향이며, 나머지는 동서 방향이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며, 화덕 자리는 바닥을 약간 판 원형을 띠는 구덩식(竪穴式)으로 1·2·3호 집자리는 3기씩 배치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저장 구덩이와 기둥 구멍도 확인되었다. 가장 큰 1호 집자리의 규모는 길이 14.2m, 너비 3.11m, 깊이 0.32m이며, 2호와 3호의 길이는 10m 정도이다. 집자리에서 나온 토기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굽다리바리 토기(臺附鉢土器)가 있으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가 있다. 석기는 반달 돌칼, 슴베 간 돌살촉(二段莖式·一段莖式磨製石鏃), 돌창(石槍),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끌(石鑿)이 있으며, 이 밖에 토제(土製) 또는 석제石製의 가락바퀴도 나왔다.

도이리 유적은 도랑에서 아가리의 단면 형태가 원형 또는 삼각형을 띠는 덧띠 토기(粘土帶土器)를 비롯하여,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뚜껑, 쇠뿔손잡이(牛角形把手·組合牛角形把手), 슴베없는 간 돌살촉(扁平無莖三角鏃), 가락바퀴 등이 나왔다. 이와 함께 형태상 쇠손칼(鐵刀)子보다는 쇠낫(鐵鎌)으로 추정되지만 그 용도가 분명하지 않은 철기가 한점 나왔다.

방축리 유적의 세장방형 집자리의 연대는 기원전 10~9세기의 청동기 시대로 판단되며, 도이리 유적의 도랑은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3~2세기로 추정된다. 도이리 유적에서 덧띠 토기와 함께 나온 철기는 화성 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철기로 중부 지역 초기 철기 문화의 유입과 전개 양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