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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미송리식 토기(美松里式土器)
| 이칭별칭=미송리형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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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유적=평양 호남리 남경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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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북한 | 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집필자=배진성
| 관련 시기=기원전 11~6세기
| 관련 유적=의주 미송리 동굴유적, 솽팡유적, 퉈터우유적, 얼다오허쯔 유적, 용천 신암리 유적, 평양 호남리 남경 유적
| 성격=유물
| 관련 개념=토기 | 가로줄 무늬 | 가로띠 모양 손잡이 | 입술 모양 손잡이 | 항아리 모양 토기 | 미송리식 토기 문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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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미송리식 토기(美松里式土器)
기본 정보
동의어 미송리형 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평양 호남리 남경 유적
키워드 토기, 가로줄 무늬, 가로띠 모양 손잡이, 입술 모양 손잡이, 항아리 모양 토기, 미송리식 토기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미송리식 토기’ 혹은 ‘미송리형 토기(美松里型土器)’란 표면이 마연되고, 몸체 및 목 부분에 가로줄 무늬(橫集線文)가 새겨지고, 각 한 쌍씩의 가로띠 모양 손잡이(橫橋狀把手)입술 모양 손잡이(口脣狀把手)가 달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를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한다. 청동기 시대의 토기 중에서도 모양과 무늬에서 개성이 강한 토기라고 할 수 있으며,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조롱박형 단지’·‘현문호(弦紋壺)’·‘쌍방형호(雙房型壺)’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토기는 1959년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 동굴 유적의 윗문화층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그 위로는 중국 랴오둥 지역의 내륙부, 아래로는 대동강 유역까지 분포하며, 전체적인 공통성과 함께 나름의 지역성을 띠면서 전개된다. 랴오둥 지역의 솽팡(雙方)·퉈터우(砣頭) 유적 등에서는 비교적 초기의 것들이 출토되며, 이후 얼다오허쯔(二道河子)·신암리·미송리 출토품에는 가로줄 무늬와 손잡이 수가 적어지고 목이 길어지는 등의 변화가 보인다. 표대·남경 유적 등 대동강 유역에서는 몸통의 최대 지름이 아래쪽에 위치하는 등 전형에서 다소 변형된 모양의 것이 확인되며, 이후 가로줄 무늬 사이에 ‘W’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묵방리식 토기(墨房里式土器)로 변화한다.

그리고 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출토되는 각종 토기와 청동기 및 돌널무덤(石棺墓) 등으로 구성되는 유물과 유구의 복합체를 가리켜 ‘미송리식 토기 문화’ 혹은 ‘미송리형 토기 문화’로 정의하기도 한다. 시기에 대해서는 처음 북한 학계의 연구에 의해 기원전 8~7세기로 제시된 이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 등을 통해 기원전 13세기경까지 올려보는 등 여러 견해가 나왔는데, 대체로 기원전 11~10세기를 상한으로 하여 기원전 7~6세기를 하한으로 보는 입장이 많다. 이 토기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함께 문헌에 나오는 고조선이라는 정치체와 관련시켜 볼 수 있는 고고 자료로 평가되고 있어서, 당시 동북아시아 일대의 역사적 동태(動態)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