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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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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목기 제작(木器製作)
기본 정보
동의어 목기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광주 신창동 유적
키워드 도끼, 자귀, 농기구, 목공구, 자루, 칠기,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도헌



설명

목기(木器)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로 만든 그릇이지만, 고고학계에서는 나무로 만든 각종 제품을 포괄하는 의미로 널리 사용한다. 목기는 돌과 함께 인류가 일찍부터 이용하였던 소재(素材)로, 청동기 시대에도 여러 연장과 그릇, 건축 부재(部材) 등 나무로 만든 제품들이 생활 곳곳에서 제작되고 사용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목기 제작 과정은 크게 벌채(伐採)와 가공(加工)으로 나뉜다. 벌채는 만들고자 하는 제품에 적합한 나무를 고르고 재료를 확보하는 작업으로, 도끼자귀로 벌채한다. 이때 단단한 나무는 불을 지펴 무르게 만든 다음 베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청동기 시대 목기 제작에 주로 이용하던 나무는 단단한 성질을 가진 참나무 속의 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이다. 단단한 나무는 내구성이 필요한 농기구목공구(木工具), 자루(柄) 등을 만드는 데 썼다. 그리고 초기 철기 시대신창동 유적 자료로 보면 그릇과 칠기(漆器)를 만들 때에는 상대적으로 무른 벚나무, 단풍나무, 오리나무 등을 이용하였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나무의 성질을 잘 알고, 용도에 맞는 적절한 나무를 선택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벌채한 나무는 자귀나 도끼로 껍질을 제거하고, 필요하면 일정 기간 건조한 다음 모양을 만드는 가공 과정을 거친다. 가공 과정은 대략적 모양을 잡는 1차 가공과 제품을 정교하게 완성하는 2차 가공으로 다시 구별된다. 1차 가공은 원목을 필요한 만큼 잘라 크게 다듬어 제품의 기본적인 모양을 만드는 공정이다. 보통 1차 가공 후, 틈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응달에서 건조시킨다. 2차 가공은 1차로 가공한 나무를 정밀하게 다듬어서 제품을 완성하는 공정이다. 이 공정에서 제품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거나 구멍을 뚫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여 원하는 모양으로 제품을 완성한다. 한편, 말목처럼 간단한 목기는 단계의 구분 없이 연속적으로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었다. 따라서 만드는 제품과 재료의 특성을 감안하여 가공 공정이 유동적으로 이루어졌다.

목기 제작에 사용하는 연장을 목공구(木工具)라고 하는데, 청동기 시대 목공구로는 도끼와 자귀, 끌 등이 있다. 청동기 시대에 사용한 목공구는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石斧), 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끌은 돌끌(石鑿)이다. 이 밖에 구멍 뚫는 도구인 천공구(穿孔具)도 있다.

조갯날 돌도끼는 야구 방망이 모양의 자루에 구멍을 만들어 날(刃)을 끼워 사용한다. 조갯날 돌도끼는 대체로 날이 두껍고 무거워서 보통 옆으로 크게 휘두르는 방식으로 사용하며 벌채, 잔가지와 나무껍질 제거, 원목 절단 등의 작업에 적합하다. 돌대팻날과 기둥 모양 돌자귀는 ‘ㄱ’자 모양의 자루에 날을 얹고 끈으로 묶어 고정한 구조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돌자귀는 날이 두껍고 제법 무거워서 잔가지와 나무껍질 제거에도 쓸 수 있지만, 주로 1차 가공처럼 나무를 크게 다듬는 작업에 사용하였다. 크고 무거운 대팻날 도끼는 1차 가공에도 쓸 수 있지만, 날이 얇고 무게가 적은 것은 2차 가공처럼 세밀한 작업에 주로 사용하였다. 돌끌과 천공구는 2차 가공의 마무리 작업에 썼다.

한편, 청동기 시대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목공구 종류와 수량에 변화가 발생하는데, 특히 돌자귀의 종류와 수량이 많아지고, 송국리 문화 단계가 되면서 홈자귀(有溝石斧)가 등장하여 널리 사용되는데, 홈자귀의 크기가 점차 작아진다. 1차 가공에 주로 사용하였던 돌자귀와 홈자귀의 분화와 증가는 목기 제작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목기 제작에서 크게 다듬는 작업이 많아진 것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변화는 소량의 정교한 목기를 만드는 방식에서 대량으로 목기를 제작하는 체계로 전환되었을 개연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청동기 시대 목기 제작은 아직 자료가 적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나무의 성질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만드는 제품에 따라 적절한 공정을 선택하여 제작하였음은 분명하다. 단편적이지만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목기와 가공 도구로 볼 때, 청동기 시대의 목기 제작 기술은 제법 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고, 나아가 청동기 시대의 여러 분야의 기술 수준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