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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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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설명==
황해북도 상원군 로동리에 위치한다. [[고인돌|고인돌]]은 로동리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남강 기슭의 동서 방향으로 길게 솟은 덕령산과 서령산 기슭에 분포한다. 덕령산에서 뻗은 ‘붉은등’으로 불리는 능선에 입지한 1기와 서령산 남쪽 기슭에 30~50m의 거리를 두고 배치된 6기 가운데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은 지름 7~8m, 높이 1m로 흙을 쌓은 후 그 중심에 구덩이를 파서 무덤방을 만들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구조이다. 무덤방은 깬돌(割石)을 쌓아서 벽을 만들고 그 안에 길이 1.8m, 너비 0.5m, 높이 0.6m의 돌널(石棺)을 설치하였다. 바닥면이 지표면보다 높기 때문에 지상식에 해당하며, 돌널 안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과 피 홈(血溝)이 있는 [[간돌검|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는 길이 12m, 너비 8m, 높이 1.5m로 흙을 쌓고 그 위에 길이 3.7m, 너비 2m, 두께 0.3m의 뚜껑돌이 놓였다. 무덤방은 할석으로 벽을 만들고 바닥에 붉은 흙과 모래를 섞어서 0.01m로 다졌으며, 그 안에 돌널을 설치한 구조이다. 돌널은 길이 0.7m, 너비 0.5m, 높이 0.2m이며, 간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3호는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구조는 1‧2호와 유사하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로동리 고인돌은 흙을 쌓은 후 그 속에 이중으로 된 지상식의 무덤방을 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
황해북도 상원군 로동리에 위치한다. [[고인돌|고인돌]]은 로동리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남강 기슭의 동서 방향으로 길게 솟은 덕령산과 서령산 기슭에 분포한다. 덕령산에서 뻗은 ‘붉은등’으로 불리는 능선에 입지한 1기와 서령산 남쪽 기슭에 30~50m의 거리를 두고 배치된 6기 가운데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은 지름 7~8m, 높이 1m로 흙을 쌓은 후 그 중심에 구덩이를 파서 무덤방을 만들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구조이다. 무덤방은 깬돌(割石)을 쌓아서 벽을 만들고 그 안에 길이 1.8m, 너비 0.5m, 높이 0.6m의 돌널(石棺)을 설치하였다. 바닥면이 지표면보다 높기 때문에 지상식에 해당하며, 돌널 안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과 피 홈(血溝)이 있는 [[간돌검|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는 길이 12m, 너비 8m, 높이 1.5m로 흙을 쌓고 그 위에 길이 3.7m, 너비 2m, 두께 0.3m의 뚜껑돌이 놓였다. 무덤방은 할석으로 벽을 만들고 바닥에 붉은 흙과 모래를 섞어서 0.01m로 다졌으며, 그 안에 돌널을 설치한 구조이다. 돌널은 길이 0.7m, 너비 0.5m, 높이 0.2m이며, 간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3호는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구조는 1‧2호와 유사하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로동리 고인돌은 흙을 쌓은 후 그 속에 이중으로 된 지상식의 무덤방을 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 고영남. (2011). <i>로동리고인돌무덤 발굴보고</i>. 사회과학출판사.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9 기준 최신판


로동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상원 로동리 고인돌군, 상원 로동리 지석묘군, 상원 노동리 고인돌군, 상원 노동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황해북도 상원군 로동리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간 돌살촉, 간 돌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진성



설명

황해북도 상원군 로동리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로동리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남강 기슭의 동서 방향으로 길게 솟은 덕령산과 서령산 기슭에 분포한다. 덕령산에서 뻗은 ‘붉은등’으로 불리는 능선에 입지한 1기와 서령산 남쪽 기슭에 30~50m의 거리를 두고 배치된 6기 가운데 2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1호 고인돌은 지름 7~8m, 높이 1m로 흙을 쌓은 후 그 중심에 구덩이를 파서 무덤방을 만들고 뚜껑돌(蓋石)을 덮은 구조이다. 무덤방은 깬돌(割石)을 쌓아서 벽을 만들고 그 안에 길이 1.8m, 너비 0.5m, 높이 0.6m의 돌널(石棺)을 설치하였다. 바닥면이 지표면보다 높기 때문에 지상식에 해당하며, 돌널 안에서 간 돌살촉과 피 홈(血溝)이 있는 간 돌검이 출토되었다. 2호는 길이 12m, 너비 8m, 높이 1.5m로 흙을 쌓고 그 위에 길이 3.7m, 너비 2m, 두께 0.3m의 뚜껑돌이 놓였다. 무덤방은 할석으로 벽을 만들고 바닥에 붉은 흙과 모래를 섞어서 0.01m로 다졌으며, 그 안에 돌널을 설치한 구조이다. 돌널은 길이 0.7m, 너비 0.5m, 높이 0.2m이며, 간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3호는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나 구조는 1‧2호와 유사하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로동리 고인돌은 흙을 쌓은 후 그 속에 이중으로 된 지상식의 무덤방을 축조한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 고영남. (2011). 로동리고인돌무덤 발굴보고. 사회과학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