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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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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4년~2007년 || 울산교동리수남유적 || 2007 || 울산문화재연구원
| 발굴조사 || 2004년~2007년 || 울산교동리수남유적 || 2007 || 울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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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7). <i>울산 교동리 수남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2026년 4월 2일 (목) 12:17 기준 최신판


교동리 수남 고인돌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교동리 수남 고인돌, 울산 교동리 수남 지석묘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교동리 1709-1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묘역식 고인돌, 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석기, 흔암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정대봉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교동리 1709-15 일원에 위치한다. 수남 집단 시설 지구 조성으로 2005년 조사하여, 고인돌 1기 및 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의 동쪽 구릉의 말단부 평탄지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로 보고되었으나, 뚜껑돌(蓋石)이나 덮개돌(上石), 받침돌(支石)은 확인되지 않았다. 무덤의 구조는 해발 97.7m의 평지에 돌을 넓게 깔고 내부에 다시 큰 돌로 장방형을 구획하여 그 안에 무덤방돌널무덤(石棺墓)을 조성하였다. 구획된 석렬(石列)은 길이 9m, 너비 4.9m이고 묘역의 북서쪽과 남동쪽 일부는 후대에 훼손되었다. 묘역의 구획석이 명확하지 않아 묘역식 고인돌이 아니고 단독으로 조성된 돌널무덤이라는 견해도 있다. 무덤방인 돌널의 크기는 길이 1.7m, 너비 깊이 0.78m 이고 쌓은 돌은 최대 4단까지 남아 있다. 유물은 돌널 내부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미완성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단독으로 1기만 조성되었다는 점, 출토된 붉은 간 토기 등을 통해서 볼 때 흔암리 유형 단계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울산의 고인돌 유적은 많지 않으나 경주에서 언양으로 이어지는 구조곡 지형에 다소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확인되는 점이 특징이다. 주로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며, 교동리 고인돌, 언양 고인돌, 송대리 고인돌, 향산리 고인돌, 지내리 명동 고인돌, 지내리 하동 고인돌, 반곡리 고인돌, 서하리 고인돌, 인보리 고인돌, 복안리 고인돌 등이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교동리, 신화리, 인보리, 지내리 등에서 최근 확인된 청동기 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은 고고학적 가치를 평가하여 현장에 보존되어 현재 야외 복원·전시되어 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4년~2007년 울산교동리수남유적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7). 울산 교동리 수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