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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두산리 유적(蔚州 斗山里遺蹟)
| 이칭별칭=울주 두산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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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정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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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두산리 유적(蔚州 斗山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울주 두산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산274-5, 922-1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깊은 바리 토기, 검단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정대봉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산274-5, 922-13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포항간 고속 도로 건설로 2010~2011년 조사하여, 집자리 13기 및 통일 신라·조선 시대 무덤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산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파른 능선과 계곡 지대에 입지하며, 서쪽으로는 척과천이 흘러 남쪽의 태화강과 합류한다. 집자리는 두산리 유적Ⅰ에서 8기, 두산리 유적Ⅱ에서 5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3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훼손이 심하다. Ⅰ-1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4.8m, 너비 3.2m, 깊이 0.5m이다. 나머지 집자리도 대부분 장방형의 중·소형 집자리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화덕 자리 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9기에서 한쪽 벽면에 약간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으며, 원형 또는 타원형이다. 화덕 자리의 구조는 두산리 유적Ⅰ은 평지식, 두산리 유적Ⅱ는 구덩식(竪穴式)이다. 기둥 구멍은 Ⅱ-3호에서 6주식(柱式)이 확인되었으며, 나머지는 불규칙적이다. 벽 도랑은 Ⅰ-2호가 네 벽 모두 설치하였고, 나머지는 ‘ㄱ’, ‘ㄷ’, ‘ㅡ’자 모양으로 부분적으로만 설치하였다. 배수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벽 도랑 내부에는 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가 주로 확인되며 무늬는 구멍무늬(孔列文)만 확인된다. 석기류는 간 돌살촉, 가락바퀴,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Ⅰ-2호 28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60년), Ⅰ-4호 27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40년), Ⅰ-6호 281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 Ⅱ-1호 24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0년), Ⅱ-2호 26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30년), Ⅱ-4호 25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0년)이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와 출토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참고하여 검단리 유형 단계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