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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두계리 유적(鷄龍 豆溪里遺蹟)
| 이칭별칭=계룡 두계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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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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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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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 시기=청동기~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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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두계리 유적(鷄龍 豆溪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계룡 두계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67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가락동식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가락동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창호



설명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67에 위치한다. 2005년 아파트 신축 공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청동기 시대 집자리 10기·구덩이 6기와 백제 시대 집자리 1기 등 총 17기가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은 계룡산이 에워싸고 있고, 북쪽으로 두계천이 인접하여 있다. 유구는 해발 110~120m의 낮은 구릉의 평탄한 정상부와 사면에 분포한다. 유적의 남동쪽으로는 대전 방동 유적이 약 800m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남쪽으로 계룡 입암리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가락동식 5기와 송국리식 5기가 조사되었다. 가락동식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화덕 자리는 돌 두름식(圍石式)이며 짧은 벽 부분으로 치우쳐 1개씩 설치되고 그 반대의 짧은 벽에 저장 구덩이가 있어, 집자리 내 공간 분화 양상이 확인된다. 주춧돌(礎盤)은 1호에서만 정연하게 보인다.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는 한 점이고, 모두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이다. 4호에서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편이 출토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일렬로 배치된 가락동 유형의 집자리와 달리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과 완만한 동사면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평면 형태는 모두 원형이며, 면적은 10호를 제외하고 20㎡ 내외이다. 내부 시설로는 다양한 형태의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며, 7·8호의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서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항아리 모양 토기가 많다.

구덩이는 6기가 조사되었다. 구덩이는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송국리식 집자리와 가까이 있어, 저장 구덩이와 같은 부속 시설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인 6호를 제외하면, 모두 원형이다. 단면 형태는 역사다리꼴로 모두 동일한 형태이다.

가락동 유형은 대전, 청주를 중심으로 하는 금강 유역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금강의 지류에 위치한 두계리 유적을 통해 이 지역에서도 가락동 유형의 취락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송국리식 집자리가 함께 조사되어 청동기 시대 마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