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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동호동 유적(大邱 東湖洞遺蹟)
| 이칭별칭=대구 동호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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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 397, 417-1, 425-6, 459-2, 463-2, 477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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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석범
| 집필자=이석범
| 조성 시기=기원전 37~9세기
| 성격=복합유적
| 크기=24,257㎡(조사면적)
| 소재지=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 397, 417-1, 425-6, 459-2, 463-2, 477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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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동호동 유적(大邱 東湖洞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동호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 397, 417-1, 425-6, 459-2, 463-2, 47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야외 화덕 자리, 도랑, 바리 토기, 송국리식 집자리,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석범



설명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 397, 417-1, 425-6, 459-2, 463-2, 477 일원에 위치한다. 2001~2002년 대구체육고등학교, 2003년 농기계 종합 교육장, 2010년 대구 도시 철도 3호선 차량 기지 건설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 8기, 구덩이 40기, 돌더미(集石) 3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9기, 도랑(溝) 15기, 삼국~조선 시대 생활 유구 및 경작지를 확인하였다. 이후 2015년 고속 국도 건설로 인해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유적 서편에 인접한 구역을 조사하여 집자리 8기, 도랑 3기, 돌무지(積石) 3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칠곡 분지를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팔거천(八筥川) 중류 동안(東岸)의 충적지에 입지하며, 남쪽으로 약 2.5㎞ 떨어져 대구 동천동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방형 2기(영문연 1·2호), 장방형 7기, 세장방형 1기, 원형 5기, 후대 삭평으로 형태를 파악할 수 없는 것 1기로 나뉜다. 방형은 길이 2.55~2.9m, 너비 1.89~2.75m, 깊이 0.15~0.26m, 장방형은 길이 4.1~7.66m, 너비 2.74~3.96m, 깊이 0.11~0.28m이다. 원형은 지름 3.2~3.8m, 깊이 0.16~0.36m이다. 원형(중문연 6·7호)의 바닥 중앙에서 기둥 구멍 2개, 원형(영문연 1~3호)은 바닥에 중앙 구덩이과 구덩이 양 옆으로 기둥 구멍, 방형(중문연 1호)은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어 송국리식 집자리에 해당한다. 화덕 자리무시설식(영문연 2호), 구덩식(竪穴式)(영문연 5·6호, 중문연 3·5호), 돌 두름식(圍石式)이 확인되었다. 1·2·4호(중문연)는 바닥식과 돌 두름식이 집자리 중앙에 일정 간격을 두고 확인되었다. 벽 도랑(壁溝)은 1호(중문연)의 동쪽 짧은 벽과 남쪽 긴 벽 모서리에 ‘ㄱ’자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동호동 181 유적의 구덩이는 집자리군의 서쪽에 길이 1~3.7m, 너비 0.5~2.5m이다. 대부분 부정형(不定形)이며, 일부 원형, 타원형, 방형이 확인되었다. 일부 바닥에 기둥 구멍이 확인되기도 한다. 도랑(영문연, 2003)은 방형, 혹은 장방형, 부정형으로 유적 전체를 구획하고 있는데, 당시 농사를 짓기 위한 경작 단위로 추정되며, 인근의 동천동과 서변동 유적에서도 주거 구역 바깥에서만 확인되는 점에서 같다. 내부에서는 석기와 민무늬 토기외에 벼의 식물규산체(植物硅酸體, plant-opal)가 소량 검출되었다. 도랑은 ‘ㅅ’자 모양의 남서, 북서-남동으로 갈라지는 형태로 길이는 34~44m, 너비는 1.8~3m, 깊이 0.6m 정도이다. 유적 남쪽의 또 다른 대형의 도랑과 합류되며, 내부에서 많은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이외에 다른 도랑(중문연)은 너비 2~5.1m, 깊이 0.5~2m로 남북 방향의 2호는 1호와 합류하고 집자리군을 휘감아 돌아 서쪽의 팔거천으로 유입된다. 도랑 안에는 30㎝ 정도 크기의 냇돌을 이용하여 도랑 벽면을 보강한 석렬이 확인되어 인위적으로 도랑을 판것으로 판단된다. 181번지 유적의 도랑은 유적 전체를 구획하고 있는 점에서 대구 동호동 유적과 유사하다. 2호 도랑에서는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石劍), 반달 돌칼, 달도끼(環狀石斧), 돌끌(石鑿), 돌도끼, 부리 모양 석기, 격지(剝片), 공이와 다량의 미완성 석기와 숫돌 등 1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완성된 석기와 미완성 석기, 격지, 석재 등이 다량 확인되는 점에서 도랑은 경작과 관련된 구획구(區劃溝)와 더불어 석기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영문연)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를 비롯한 각종 토기 편, 다수의 미완성 석기, 간 돌검, 간 돌살촉, 돌창(石槍), 반달 돌칼, 숫돌(砥石), 모룻돌(臺石),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 편이나 석재로 가공된 부리 모양 석기가 백여 점 출토되어 경작지로 여겨지는 구획된 도랑의 성격과 관련된 유물로 판단된다. 주변 평야에서 같은 형태의 집자리와 경작지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당시의 마을이 넓은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1호 집자리((영문연, 2003) 265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년), 5호 집자리((영문연, 2010) 29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10년)·2,9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15년), 7호 도랑((영문연, 2003) 260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5년 또는 기원전 615년), 9호 야외 화덕 자리(영문연, 2003) 4,7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3620년)로 확인되었다.

동호동 유적은 팔거천 주변에 입지한 동천동 유적, 매천동 유적, 팔달동 유적과 함께 칠곡 분지 일대의 청동기 시대 생활상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