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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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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덕곡리 유적(泗川 德谷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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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 501, 735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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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고민정
| 집필자=고민정
| 조성 시기=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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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 501, 735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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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4년 02월 09일~2004년 07월 07일 || 사천 덕곡리 유적(Ⅰ)-구릉- || 2006 || 경남고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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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2 판


덕곡리 유적(泗川 德谷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사천 덕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 501, 73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돌널무덤, 기둥건물터, 폐기장, 도랑, 구덩이, 화덕자리, 기둥 구멍군, 골아가리 토기, 대롱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 501, 735 일원에 위치한다. 사천 시청사 건립으로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2004년 조사하여(덕곡리 501), 고인돌 1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7기, 폐기장 1기, 도랑(溝) 4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용현 택지 개발로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2008~2009년 조사하여(덕곡리 735), 지석묘 10기, 구덩이 2기, 화덕 자리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동쪽의 높은 산지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말단부와 능선 사이 곡간지에 해당된다. 두 유적은 인접하여 위치한다.

덕곡리 501 유적은 남쪽 구릉과 중앙에 무덤과 기둥 건물터가 배치되어 있고, 북동쪽 끝 부분에는 기둥 건물터가 단독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남쪽 끝에서 확인된 돌널무덤은 편평한 깬돌(割石)을 세워 벽석(壁石)을 축조하였고, 북쪽 긴 벽석(長壁石)은 바닥에 벽석(壁石)을 세웠던 홈이 확인된다. 뚜껑돌(蓋石)은 양쪽 긴 벽석에 걸쳐서 4매를 덮어 놓았다. 고인돌은 구릉 사이 곡간지에 조성되었다. 주변에 깬돌을 이용해 타원형으로 구획하고 내부를 다량의 유물로 채우고 있는 형태이다. 보고자는 이 석열을 고인돌의 묘역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하여 구획 고인돌로 명명하였지만, 이러한 형태가 확인된 예가 없어 관련 자료의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 무덤방(埋葬主體部)은 돌널이며, 깬돌을 쌓아 벽석을 축조하고 판돌 모양의 뚜껑돌을 올려 놓은 형태이나 축조 상태가 정연하지 못하다. 뚜껑돌은 현재 1매만 남아 있으며, 주변 묘역 내에서 다량의 토기 편과 석기 편이 출토되어 매장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 대형 항아리(大壺),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붉은 간 토기 바리(赤色磨硏鉢), 바닥 구멍 토기(底部透孔土器) 등이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간 돌도끼, 돌칼(石刀),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덕곡리 735 유적의 고인돌은 해발 30m에 10기가 군집해 있다. 덮개돌은 1·4호에서만 확인되었으며, 7기(1~5·7·8호)는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고 나머지 3기는 무덤방만 확인되었다. 묘역 시설은 원형과 장방형으로 구분되는데, 대부분 원형이다. 구획석은 면을 맞추어 눕혀쌓기 하였는데, 7호는 장방형 묘역으로 구획석을 세워 쌓기하였다. 구획석 내부에는 흙이나 돌로 채워 넣었는데, 구획석 안으로 3~5단 정도 강돌川石을 이용하여 비스듬하게 세우듯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채워 넣었다. 1·2호가 연접해 있고, 2호 남쪽으로 3호가 조성되었으며, 사이에 9·10호 무덤방이 분포한다. 남쪽으로 소형의 원형 묘역을 가진 4호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무덤방은 깬돌을 사용하여 벽석을 정연하게 쌓은 돌널과 벽석이 정연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채워 넣은 나무관(木棺)으로 구분된다. 다만 3호는 벽석을 정연하게 쌓은 돌널 형태인데, 서쪽 긴 벽에 접해 강돌 8매를 세워 놓아 내부에 관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돌은 고인돌 상부의 훼손이 심하여 유실이 많이 되었다. 9·10호는 뚜껑돌 3매만 남아 있고, 7호는 판돌로 겹뚜껑돌(二重蓋石)을 덮고 주변에 작은 깬돌로 보강하였다. 유물은 무덤방 내부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과 슴베 돌살촉, 옥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3호 고인돌에서는 길이 2.1~4.4㎝의 대형 대롱옥(管玉)이 출토되었는데, 사천 이금동 B-6호 고인돌, 진주 대평리 옥방 2호 고인돌, 마산 진동 29호 돌널무덤과 함께 이러한 대형 대롱옥이 부장된 고인돌은 이 일대에 특권층의 무덤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4년 02월 09일~2004년 07월 07일 사천 덕곡리 유적(Ⅰ)-구릉- 2006 경남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 2008년 사천 덕곡리유적 2010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