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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평촌동 고인돌군 | | 한글표제어=평촌동 고인돌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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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4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안양 평촌동 고인돌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112(舊 평촌동)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돌도끼, 돌살촉, 숫돌, 민무늬 토기, 슴베 간 돌살촉, 알구멍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우장문 |
설명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1112(舊 평촌동) 일대에 위치한다. 안양 평촌 신도시 건설로 1989년 명지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 조사하고 1990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평촌산 남서쪽 기슭의 갈산 마을에 1기(1호), 신촌 마을 입구 구릉 정상에 4기(2~5호), 귀인 마을 안쪽 구릉에 1기(6호), 평촌 마을 북동쪽 논에 6기(8~12호)가 분포한다.
평촌 마을의 고인돌군은 6기 중 3호와 4호는 덮개돌(上石)의 크기가 각각 길이 4.4m, 너비 2.1m, 두께 0.4~0.5m와 길이 3.7m, 너비 2.9m, 두께 0.4~0.5m로 하나의 덮개돌 아래에 3~4개의 무덤방(墓室)을 가진 구조이다. 특히 3호 고인돌의 제2·3호 돌넛널(石槨)과 4호 고인돌의 4개의 무덤방은 그 크기가 1m 내외로 소형이다. 덮개돌은 화강암이며 방향은 대체로 물의 흐름과 일치한다. 고인돌 주변에서 화강편마암제 돌도끼 및 단면 마름모꼴의 돌살촉, 숫돌(砥石), 민무늬 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신촌 마을의 고인돌군은 해발 80m의 산 정상부에 4기가 둥글게 배치되어 있는데, 1호는 길이 3.4m, 너비 2.5m, 두께 0.3~0.4m의 덮개돌 서쪽에서 돌널형(石棺形)의 유구가 완전하게 노출되었을 뿐 다른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남아 있지 않았다. 3호 덮개돌은 길이 1.85m, 너비 1.55m, 두께 0.2~0.3m로 하부 구조는 반원형의 판돌(板石) 2매만 남아있고 다른 시설이 없는 점으로 보아 매장 시설로서의 고인돌이라기보다는 신앙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4호 덮개돌은 길이 2.05m, 너비 1.9m, 두께 0.25m로 하부 구조를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1점, 숫돌, 민무늬 토기 저부 편이 발견되었다.
알 구멍(性穴)은 평촌 마을 고인돌의 1호와 3호에서는 각각 3개와 1개가 있으며, 귀인 마을 고인돌에 7개, 신촌 마을 1호에 1개, 3호에 3개가 있었다. 고인돌군 가운데 보존 상태가 양호한 5기가 안양 호계동 자유 공원 내로 이동·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