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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13:23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동과, 청동과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난둥거우 유적, 둥다장쯔 유적, 량자잉쯔 유적, 솽산쯔 유적, 신좡터우 유적, 싼관뎬쯔 유적, 싼진거우 유적, 완주 갈동 유적, 왕장춘 유적, 우진탕 유적, 위다오거우 유적, 텐수이 유적, 궁자잉쯔 유적 |
| 키워드 | 중위안식 동과, 랴오닝식 동과, 세형동과, 세형동검 문화, 중세형 동과, 중광형 동과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조진선 |
설명
꺾창(戈)은 긴 자루에 날을 직각에 가깝게 묶어서 찍거나 베는 데 쓰는 무기이다.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 후기에 돌꺾창, 상(商)나라 때에는 청동 꺾창이 등장한다. 이후 형태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무기로 자리하며, 중위안 문화(中原文化)의 확산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전역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따라서 청동 꺾창은 한국 문화권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무기가 아니다. 중위안식 동과는 비파형동검 문화 전기에는 랴오시 지역에서 소수만 확인되지만, 후기에 이르면 대거 유입된다. 이와 더불어 랴오닝 지역에서 새로 만들어진 랴오닝식 동과가 등장한다.
랴오시·랴오둥 지역부터 대동강 유역에 걸쳐 확인되는 중위안식 동과(中原式銅戈)는 몸통(戈身)이 곧은 날(直刃)인 것과 굽은 날(曲刃)인 것으로 구분된다. 곧은 날 중위안식 동과는 랴오시 지역의 스얼타이잉쯔 문화에서만 주로 확인되며, 상대적으로 크고 창 끝(鋒部)이 뾰족한 것과 상대적으로 작고 창 끝이 둥근 것으로 세분된다. 상대적으로 큰 중위안식 동과는 후루다오(葫蘆島) 우진탕(烏金塘) 유적을 비롯해서 기원전 8~6세기의 비파형동검 문화 전기 유적들에서 간혹 출토된다. 상대적으로 작은 중위안식 동과는 카쭤(喀左) 난둥거우(南洞溝), 링위안(凌源) 싼관뎬쯔(三官甸子), 젠창(建昌) 둥다장쯔(東大杖子) 유적 등 기원전 5~4세기의 비파형동검 문화 후기 유적들에서 많이 출토된다. 그리고 굽은 날 중위안식 동과는 랴오시 지역은 물론 랴오둥과 한반도 북부까지 확인되는데,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한국 문화권 특유의 청동 꺾창은 기원전 5~4세기에 중위안식 동과의 영향을 받아 랴오닝 지역에서 새로 만들어진 랴오닝식 동과(遼寧式銅戈)이다. 랴오시 지역에서 먼저 확인되어서 ‘랴오시식 동과(遼西式銅戈)’라고도 하며, 특징적인 호의 모습을 주목해서 ‘쌍호과(雙胡戈)’나 ‘호자과(胡刺戈)’라고도 하고, 짧은 슴베를 주목해서 ‘단내식 동과(短內式銅戈)’라고도 한다. 이러한 랴오닝식 동과는 쌍호(雙胡), 짧은 슴베(短內), 등대식(柱脊式) 대칭 구조, 깊은 피 홈(血溝), 등대 연마 방법 등에서 중위안식 동과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서 확인되는 세형동과(細形銅戈)의 조형(祖形)이 된다.
랴오닝식 동과는 젠창 둥다장쯔, 젠창(建昌) 위다오거우(于道溝), 닝청(寧城) 량자잉쯔(梁家營子), 후루다오(葫蘆島) 싼진거우(傘金溝) 유적 등 랴오시 지역 스얼타이잉쯔 문화 후기 유적들에서 많이 확인된다. 랴오둥 지역에서는 랴오양(遼陽) 텐수이(甛水) 유적에서 기원전 5~4세기의 거푸집이 확인되었고, 콴뎬(寬甸) 솽산쯔(雙山子), 단둥(丹東) 왕장춘(望江村) 유적에서는 기원전 3세기의 랴오닝식 동과가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네이멍구 자치구 카라친기(喀喇沁旗) 궁자잉쯔(宮家營子) 유적에서도 랴오닝식 동과가 출토되어서 그 분포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사실이 확인된다. 따라서 랴오닝식 동과는 기원전 5~4세기에는 랴오시와 랴오둥 지역에서 모두 유행하다가 기원전 3세기에는 랴오둥 지역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형동과(細形銅戈)는 한반도에서 주로 확인되기 때문에 ‘한국식 동과(韓國式銅戈)’로도 불린다. 더욱 짧아져 흔적만 남아있는 호(胡), 짧은 슴베, 등대식 대칭 구조, 깊은 피 홈 등이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들은 대부분 랴오닝식 동과를 계승한 것이다. 세형동과는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다. 그뿐 아니라 일본 열도의 야요이 문화권으로도 파급되어 중세형 동과와 중광형 동과(中廣形銅戈) 등 일본 열도 청동 꺾창들의 조형이 된다. 중국 허베이성 이현(易縣)에 있는 옌샤두(燕下都) 신좡터우(辛莊頭) 30호 무덤에서는 길이 27.6㎝의 세형동과가 출토되었는데, 당시의 한·중 교류관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세형동과는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의 중기에 등장해서 후기까지 이어지므로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기원전후까지 유행하였다. 시기에 따른 형태적인 변이가 크기 않은데, 이른 시기의 세형동과는 피 홈이 ‘八’자 모양으로 마무리되고 슴베(內, 莖部) 너비는 3.5㎝ 정도이며, 자루를 착장하는 각도(着柄角)는 97~100° 정도이다. 늦은 시기의 세형동과는 이러한 속성들의 진폭이 커지면서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된다. (傳)영암 거푸집 일괄 유물이나 완주 갈동 거푸집에서 세형동과의 주형이 확인되고 있어서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동 꺾창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중국에서 유입된 중위안식 동과가 랴오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에 등장하며, 기원전 5~4세기에는 대거 유입된다. 그리고 이러한 중위안식 동과를 모방해서 랴오닝식 동과가 만들어진다. 기원전 3세기 중엽에는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권에서도 랴오닝식 동과를 모방해서 만든 한국식 청동 꺾창, 즉 세형동과가 등장한다. 세형동과는 일본 열도의 야요이 문화권으로도 파급되어 중세형동과, 중광형 동과 등 일본 열도 청동 꺾창의 조형이 된다. 연나라 중심지인 옌샤두 신좡터우 30호 무덤에서 출토된 사례도 있어 청동 꺾창은 기원전 1000년기의 한국·중국·일본 사이의 교류 관계뿐 아니라, 각 문화권에서 물질 문화가 어떻게 수용되어 변용되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