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2770: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277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277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진라리 유적 | | 한글표제어=진라리 유적 | ||
| 이칭별칭=청도 진라리 유적 | | 이칭별칭=청도 진라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3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청도 진라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903-3, 933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기둥 건물터, 고인돌, 구덩이, 야외 화덕 자리, 도랑,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903-3, 933 일원에 위치한다.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건설에 앞서 2002~2003년 영남문화재연구원(진라리 903-3)이 조사하여, 집자리 93기, 기둥 건물터 4기, 고인돌 5기, 구덩이 22기, 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5기, 도랑(溝) 3기가 확인되었다. 이후 인접하여 청도-남천간 국도 25호선 건설로 2008~2010년 한빛문화재연구원(진라리 933)이 조사하여, 집자리 43기, 구덩이 21기, 기둥 건물터 4기, 야외 화덕 자리 3기, 도랑 17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하나의 유적으로 판단된다.
진라리 903-3 유적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8기, 장방형 16기, 방형 10기, 말각장방형 17기, 말각방형 19기, 타원형 1기, 원형 22기로 구분된다. 집자리의 분포는 세장방형은 유적 전체에 골고루 확인되며, 장방형은 세장방형에 비해 공간 점유율이 낮고 점차 중복 양상을 보인다. 방형은 다른 유구들과 대부분 중복되어 있었고, 말각장방형은 여러 기씩 무리(群集)를 이루었으나 하천이 있는 동쪽으로 가면서 흩어지는 양상이다. 원형은 하천 쪽으로 치우쳐서 1기 또는 2~3기씩 무리를 이룬다. 집자리의 면적은 세장방형 52.24㎡, 장방형 15.87㎡, 방형 5.9㎡, 말각장방형 8.42㎡, 타원형 44.8㎡, 원형 16.89㎡이다. 전체적으로 세장방형과 타원형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가운데 구덩이와 양쪽의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조에 따라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와 무시설식(無施設式) 화덕 자리로 구분된다. 세장방형은 중심에서 치우쳐 2~3개의 화덕 자리가 설치되는데 비해 장방형과 방형은 무시설식 화덕 자리 1개가 설치된다. 벽 도랑은 대부분 세장방형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세장방형에서는 화덕 자리를 중심으로 양옆에 중심 기둥 구멍이 배치되며, 일부는 저장 구덩이도 확인된다. 장방형은 중심 기둥 구멍을 갖춘 집자리 2기와 중심 기둥 구멍과 4주식(柱式)의 구조를 갖춘 집자리 1기가 조사되었다. 저장 구덩이는 1기에서만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가 없는 세장방형, 타원형, 원형 집자리는 가운데 구덩이가 확인된다. 말각장방형 집자리는 내부 구덩이의 형태가 원형·타원형·부정형 등 다양하고 타원형, 원형은 모두 타원형이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로 문양은 겹아가리(二重口緣)+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겹아가리+짧은 빗금+골아가리(口脣刻目), 겹아가리+골아가리무늬·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 구멍무늬가 시문되었고 붉은 간 토기도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슴베 없는 돌살촉(無莖式石鏃),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돌도끼, 간 돌검, 돌칼, 가락바퀴,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이 하천변에 입지한 유적임에도 그물추(漁網錐)는 단 1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구덩이는 구조가 단순하고 중복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집자리의 부속 시설로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세장방형으로 구덩식(竪穴式)과 지상식으로 구분된다. 구덩식은 지면을 파고 설치되었고, 지상식은 건물 바닥을 지면보다 높거나 같게 형성한 것으로 마루(床面)를 지면에 마련한 지면식(地面式)과 지상에 마련한 고상식(高床式)으로 구분된다. 분포는 1·2호는 원형 집자리 5호 부근에, 3호는 방형 집자리 72·11·12호 부근에 중복되어 있다. 1호는 4×1칸으로 면적 14.8㎡, 2호는 11×2칸으로 면적 28.8㎡, 3호는 9×1칸으로 면적 25.9㎡, 4호는 5×2칸으로 면적 29㎡이다.
고인돌은 주변에서 덮개돌(上石)로 추정되는 거석(巨石) 4개가 확인되었다. 고인돌 1호의 덮개돌은 길이 2.4m, 너비 1.32m, 높이 1.1m, 무게 8톤, 2호는 길이 2.05m, 너비 1.14m, 높이 0.5m, 무게 3톤이다. 덮개돌이나 뚜껑돌 아래 지하식 돌널을 만들었는데, 돌널 주위로는 돌을 넓게 깔아 묘역(墓域)으로 구분하였다. 돌널은 1호가 길이 2.78m, 너비 1.9m, 깊이 0.6m, 3호가 길이 3m, 너비 0.64m, 깊이 0.25m이다. 유물은 2·3호에서 붉은 간 토기, 1~3호에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3·4호에서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의 배치는 남쪽이나 북서쪽, 동쪽 등 모두 주거 구역 바깥에서만 확인되어 마을(聚落)에서 생활 공간과 무덤 공간이 분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라리 933 유적의 집자리는 세장방형 4기, 장방형 10기, 방형 5기, 말각방형 21기, 원형 3기가 확인되었다. 세장방형은 1~2기가 인접하여 조성되었고, 중·소형인 장방형, 방형은 2~3기씩 무리를 이루며 분포한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으로 원형을 제외한 집자리에서 1개씩 설치하였고, 장방형과 세장방형에서는 2~3개가 확인되었다. 세장방형인 33호는 중앙부에 일정한 간격으로 3개를 설치하였다. 집자리는 세장방형→장방형, 방형→말각방형→원형으로 변화가 확인된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로, 무늬는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무늬,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겹아가리 ‘X’선 무늬, 골아가리 구멍무늬,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무늬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검, 돌살촉, 돌칼, 부리 모양 석기,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집자리 무리와 도랑 사이 공간에 밀집 분포한다. 세장방형과 장방형으로 구분되며, 1호는 단독으로 위치하고, 2~4호는 나란하게 위치한다. 면적은 20㎡ 미만의 소형이며, 2×2, 1×3, 1×5, 1×6칸으로 다양하다. 건물터 주변으로 기둥 구멍이 무질서하게 확인되지만 일부 정형성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규모가 더 확장되거나 다른 기둥 건물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903-3 유적 집자리 8호 30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60년), 17호 27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860년), 933 유적 집자리 1호 30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20년), 기둥 건물터 2호 258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5년)로 확인되었다.
진라리 유적은 하천변 충적지와 구릉 말단부에 입지한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집자리와 무덤을 중심으로 다양한 유구들이 분포하여 당시 마을의 공간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다양한 집자리의 모양과 구조는 당시 가옥(家屋)의 구조와 변천 양상을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2년 07월 29일~2003년 05월 30일 | 청도 진라리유적 | 2005 | 영남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8년~2010년 | 청도 진라리 933 유적 | 2012 | 한빛문화재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