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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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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조례동 유적(順天 照禮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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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순천 조례동 유적, 조례동 신월 고인돌군, 신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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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2 판


조례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순천 조례동 유적, 조례동 신월 고인돌군, 신월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 1003(Ⅰ군)·988(Ⅱ군)·1091(Ⅲ군)·1684-4(신월 '가'지구)·1714-1(신월 '나' 지구)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슴베 간 돌검, 자루 간 돌검, 민무늬 토기, 간 돌살촉, 자루 간 돌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세미, 이동희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 1003(Ⅰ군)·988(Ⅱ군)·1091(Ⅲ군)·1684-4(신월 '가'지구)·1714-1(신월 '나' 지구)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조례동 신월 고인돌 Ⅰ·Ⅱ·Ⅲ군과 신월 유적 가·나 지구로 구분된다. 유적들은 모두 반경 500m 범위 내에 분포한다.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조례동 신월 고인돌군 Ⅰ·Ⅱ·Ⅲ이 조사된 바 있다. 봉화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산사면 말단부 평지(해발 20m)에 유적들이 분포한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연향천이 가로질러 흘러 주변으로는 하천을 따라 작은 평지가 발달해 있다. 조례동 유적에서는 여러 고인돌군을 비롯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가 조사되었다.

신월 고인돌군Ⅱ(조례동 988 일원)는 1998년 지표 조사에서 덮개돌이 발견되어 보고된 바 있으며, 2010년 건물 신축과 관련하여 대한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13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4열로 분포하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로 연향천의 물길 방향과 평행하다. 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이 9기, 덮개돌이 교란된 채 확인된 것이 1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이 3기이다. 무덤방(墓室)은 북쪽 짧은 벽이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는 12호 고인돌을 제외하면 돌널형(石棺形) 1기, 혼축형(混築形) 5기, 움형(土壙形) 2기로 구분된다. 무덤 구덩이(墓壙)의 1단에 주로 무덤방을 시설하고, 2단에 돌무지(積石)받침돌(支石)을 설치하였다. 혼축형 무덤방 5기는 무덤 구덩이가 2단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총 11점으로 고인돌 껴묻거리가 8점, 수습품이 3점이다. 고인돌 껴묻거리로는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2점,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2점, 간 돌살촉 2점, 돌끌(石鑿) 1점,민무늬 토기 1점 등이다.

조례동 신월 고인돌군Ⅱ는 출토된 간 돌검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전 8~4세기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연향천 일대에서 조사된 조례·상비 고인돌군, 조례동 신월 고인돌군과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이 서로 유사해서 전라남도 동부지역 고인돌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신월 고인돌군Ⅲ(조례동 1091 일원)은 1998년 지표 조사에서 덮개돌이 발견되어 보고된 바 있으며, 개인 사업 건축물 신축부지에 포함되어 2015년에 동북아지석묘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6기, 무덤방 4기와 함께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1호를 제외한 나머지가 2열을 이루고 있다. 장축 방향은 연향천과 동일한 북동-남서이다. 덮개돌이 확인된 1~6호는 모두 받침돌(支石)을 갖추고 있는 바둑판식(碁盤式) 고인돌이다. 무덤방은 8기에서 확인되는데 돌덧널형(石槨形) 3기, 혼축형 3기, 돌널형 2기이다.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살촉, 간 돌검, 돌끌, 갈판(碾石), 옥(玉)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1호 고인돌과 중복되어 있는데, 집자리가 먼저 축조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이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살촉, 돌창(石槍), 숫돌(砥石),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1호 집자리의 화덕 자리는 2691±44 BP, 숯(木炭)은 2711±47 BP로 측정되었고, 3호 고인돌은 2699±47 BP로 측정되었다. 따라서 집자리와 고인돌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례동 신월 유적(1684-4·1714-1 일원)은 1992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고인돌 6개 군 35기를 확인하였다. 이 가운데 1995년 택지 개발 지구에 포함되는 2개 군 13기를 발굴 조사하여, 1군 가군에서만 하부 구조를 가진 고인돌 2기를 확인하였다. 또한 향후 개발로 인해 주변의 고인돌이 훼손될 것에 대비하여 다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1개 군 13기를 추가로 확인하였다.

가군 고인돌은 지표 조사에서 모두 11기로 확인되었으나, 발굴 조사에서는 2기만이 하부 구조가 있으며, 나머지는 이동된 것 1기와 자연석으로 판명되었다. 1호 덮개돌은 길이 3.1m, 너비 2.31m, 두께 2.05m, 무게 13.5톤이고 2호는 길이 2.2m, 너비 1.9m, 두께 0.62m, 무게는 3.3톤으로 각각 받침돌 2매가 받치고 있다. 무덤방은 1호가 길이 1.64m, 너비 0.25~0.42m, 깊이 0.17~0.25m이고, 2호가 길이 1.57m, 너비 0.34~0.44m, 깊이 0.28m로, 깬돌을 이용한 점, 바닥에 아무런 시설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벽석의 축조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1호 무덤방은 깬돌을 몇 단으로 쌓아 올린 형태가 아니고, 무덤방의 상부에만 1단으로 깬돌을 놓은 형태이다. 2호는 깬돌을 1단으로만 쌓은 부분도 보이기는 하나 대부분 2단으로 쌓아 축조하였는데, 깬돌을 이용하여 바닥에서부터 상부까지 몇 단으로 쌓는 일반적인 돌덧널형(石槨形)과는 크게 다르다. 이러한 구조는 축조의 편이성이란 문제와 더불어 돌덧널형에서 구덩형(土壙形)으로 변화되는 과도기 형식으로 간주된다. 또한 무덤방 바닥도 아무런 시설이 없는 맨바닥으로서 돌 두름형(圍石形)과 통한다.

유물은 1호에서 간 돌검 편과 간 돌살촉 각 1점씩이 양 끝벽 가까이에 거의 수직으로 꽂힌 채 출토되었고, 2호에서는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1점이 받침돌 아래에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