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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2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정읍 장금리 고인돌군, 정읍 장금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 842-6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바둑판식 고인돌, 거석 기념물, 제단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정다운 |
설명
전라북도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 842-6에 위치한다. 2006년 지방도 확·포장 공사 구간 내(구림-산내 간)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확인되었으며, 이후 2013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 1기와 추정 덮개돌(上石)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지방도 제729호선과 옥정호로 유입되는 하천 사이의 좁은 곡간지에 위치한다. 고인돌군은 도로 높이(209m)에서 약 4m 아래에 위치하고 있고, 각각 동서 방향으로 약 7m 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조사 당시 동쪽의 것이 1호 고인돌, 서쪽의 것이 2호 고인돌로 명명되었다.
1호 고인돌의 평면 형태는 넓은 장방형 또는 배 모양(舟形)에 가깝다. 규모는 길이 6.6m, 너비 2.9m, 최대 두께 0.97m 내외이며 무게는 약 30톤이다. 또한 상면의 가장자리에 지름 0.1m 내외의 돌을 다듬은(治石) 흔적이 관찰되나, 정형성은 없으며 둥글고 움푹 파인 12개 정도의 알 구멍 과 유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조사 결과, 1호 고인돌은 6개의 받침돌(支石) 을 이용한 바둑판식 고인돌(基盤式支石墓) 로서, 하부에는 뚜렷한 매장 주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받침돌은 높이 0.4m~0.6m로 대형이다.
2호 고인돌은 조사 당시 총 3매가 놓여 있었으나, 본래 1개의 덮개돌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 또는 배 모양으로 추정되며 길이 7.8m, 너비 3.56m, 최대 두께 2.3m이다. 조사 결과 매장 주체부 를 비롯한 하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고인돌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덮개돌의 규모와 형태로 미루어보아 고인돌의 덮개돌로 이용하기 위해 채석했을 가능성이 있어 추정 덮개돌로 보고되었다.
장금리 고인돌은 1호와 2호 모두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특히 1호의 받침돌은 대형이다. 따라서 무덤방이 없는 고인돌이거나 단독으로 입지하는 거석 기념물 로서 제단 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