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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남전리 고인돌군[密陽 南田里支石墓群] | |||
| 이칭별칭=밀양 남전리 고인돌군,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 | 이칭별칭=밀양 남전리 고인돌군,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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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2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밀양 남전리 고인돌군,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 1035-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간 돌검,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덮개식 고인돌, 껴묻기 공간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기념물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 1035-1 일원에 위치한다. 1974년 남전리 241-1, 1979년 남전리 762 일대에서 간 돌검, 간 돌살촉, 붉은 간 토기 등이 발견되어 동아대학교 심봉근 교수가 현지를 답사하여 유구를 실측하고 유물의 출토경위를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해발 600m의 덕대산(德大山) 기슭의 남쪽 사면에 7~10기씩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上石)은 윗면에 알 구멍(性穴)이 있는 것이 있으며, 받침돌(支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보담마을 앞 길가의 6기 중 덮개돌의 크기가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2m, 너비 0.6m, 두께 1m, 가장 큰 것은 길이 2.6m, 너비 1.8m, 두께 1.1m이다. 조사된 무덤방(墓室)은 돌널형(石棺形)으로 긴 벽은 판돌(板石) 2~3매를 가로로 설치하고, 짧은 벽은 양 긴 벽 사이에 1매의 판돌을 끼웠다. 바닥에도 판돌을 깔았으며, 뚜껑돌(蓋石)은 4매의 판돌을 이용하였다. 여기에 다시 벽을 돌아가면서 대형의 깬돌(割石)을 2~3단 쌓았다. 또 동쪽 벽에 연접해서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껴묻기 공간(副葬空間)을 따로 마련했다. 조사 당시 이미 덮개돌이 급류에 휩쓸려 유구의 내부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주민의 말에 의하면 덮개돌 위에는 자갈과 흙이 쌓여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받침돌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蓋石式)으로 추정되며, 껴묻기 공간을 별도로 만든 특이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간 돌검은 동쪽의 짧은 벽 쪽에서 출토되었고, 간 돌살촉은 중앙부에서 남쪽 벽으로 치우쳐 있었다. 붉은 간 토기는 별도로 만든 껴묻기 공간에 놓여 있었다. 1974년에 신고된 유물은 경부가 직립한 항아리 모양(壺形)의 붉은 간 토기와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이다.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 국가유산 | 경상남도 기념물 | 밀양 남전리 지석묘군 (密陽 南田里 支石墓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