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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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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우산리 내우 고인돌군[順天 牛山里내우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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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순천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 순천 우산리 내우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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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1 판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순천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 순천 우산리 내우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334-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비파형동검, 간 돌검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영문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334-3 일원에 위치한다. 주암댐 수몰 지역에 포함되어 1986년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우산리 일대에는 산기슭 아래의 완만한 구릉에 4개 군 12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이 중 내우마을에서는 58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면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덮개돌(上石)은 대체로 구릉의 반대 방향인 남북으로 여러 열(列)을 이루며 배치되었고, 무덤방(墓室)의 방향도 이와 같다.

덮개돌은 길이 1.3m, 너비 0.6m, 두께 0.3m부터 길이 3m, 너비 2.2m, 두께 1.1m까지 다양하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 39기, 움형(土壙形)이 2기, 돌 두름형(圍石形)이 5기, 덮개돌 아래에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것이 6기, 그리고 덮개돌이 없는 돌덧널형 6기 등 58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모두 돌덧널형 무덤방에서만 출토되고 있으며, 껴묻거리(副葬品)는 21기에서 발견되어 다른 고인돌과는 달리 부장 풍습이 상당히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출토된 유물은 간 돌검 17점, 간 돌살촉 24점, 삼각 돌칼 1점, 돌끌(石鑿) 1점, 홈자귀(有溝石斧) 1점, 달도끼(環狀石斧) 편 1점, 비파형동검 2점, 곱은옥(曲玉) 3점, 대롱옥(管玉) 1점, 작은옥(小玉) 6점, 흙구슬(土球) 1점 등 57점, 이 외에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가지무늬 토기 편 등이 있다. 이곳에서의 껴묻거리는 한 무덤방에 1점씩만 출토되는 것이 주류이나 8호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 곱은옥 2점, 작은옥 6점이, 53호에서는 대롱옥과 구멍 뚫린 슴베 간 돌검(有孔有莖式磨製石劍)이 각각 공반된 예도 있다. 이는 비파형동검과 옥이 고인돌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8호와 38호 고인돌에서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8호 동검은 반파품을 재가공한 것으로 곱은옥 2점, 작은옥 6점과 민무늬 토기 편이 공반되었다. 38호 동검은 상단부를 재가공한 것인데, 북쪽 동벽석 아래에서 발견되어 8호와 같은 출토 상을 보인다.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발굴 조사된 단일 유적 중의 하나이며, 또한 발굴 과정에서 처음으로 비파형동검이 발견된 유적이기도 하다. 무덤방 수나 껴묻거리로 보아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며, 무덤방 구조나 방향에서 2~3기씩 쌍을 이룬 경우로 보아 혈연적으로 가까운 친족 집단의 공동 묘역(共同墓域)의 성격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 발굴된 고인돌 중에서 가장 다양한 유물과 함께 다량의 간 돌검들이 부장 유물로 출토되어 껴묻거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사례를 보여준 유적이다. 고인돌 중 상태가 양호한 42기의 덮개돌과 9기의 하부 구조가 순천 고인돌공원(우산리 454 일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