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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곡성 연반리 전기 고인돌군, 곡성 연반리 전기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36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농경 의례, 제단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영문 |
설명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연반리 362 일원에 위치한다. 호남 고속 도로 확장으로 1993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보성강으로 유입되는 석곡천변으로 산기슭의 경사면에 2기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남동쪽의 평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입지하고 있으며 크기도 대형급이다.
1호 고인돌 덮개돌(上石)은 길이 4.15m, 너비 2.6m, 두께 2.2m이며 무게는 50톤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받침돌(支石) 11매를 원형으로 돌려 배치하였으며, 받침돌 사이에는 납작한 강돌(川石)을 길이 1.8m, 너비 1.1m 범위로 깔았다. 2호의 덮개돌은 길이 3.9m, 너비 2.8m, 두께 2.98m의 괴석형(塊石形) 덮개돌로 무게가 35톤이다. 받침돌은 7매가 받치고 있었으나 중앙에 대형 받침돌이 있으며, 북쪽 즉 산쪽에 납작한 자연석을 눕혀 세워 묘역(墓域)을 구획하였다. 받침돌 사이에는 강돌이 깔려져 있는데, 길이 2.2, 너비 1.1m 범위이다. 두 고인돌 모두 뚜렷한 무덤방(墓室)은 없고, 강돌만 전면에 깔려 있다. 이것은 고인돌이 무덤보다는 제단(祭壇)과 같은 의례 행위의 표석(標石)으로서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고인돌의 내부 강돌 사이에서는 많은 민무늬 토기 편들이 출토되었고, 받침돌 주위에서는 농구류(農具類)와 공구류(工具類) 등 생활 용구 석기 편들이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수량이나 종류에 있어서 다른 고인돌들과 큰 차이를 보인 이러한 유물은 당시 농경 의례의 일환으로 석기를 파쇄(破碎)한 후 매납한 행위를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제단 고인돌은 평지보다 높은 곳에서 무덤방 없이 받침돌만 있는 거대한 바둑판식 고인돌이 특징이다. 이곳처럼 고인돌 2기가 쌍으로 있는 예는 부여 산직리 바둑판식 고인돌에서도 볼수 있다. 고인돌 조사 후 호남 고속 도로 상행선 곡성휴게소 고인돌공원에 이전·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