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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양평 앙덕리 고인돌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알 구멍, 천공구, 뗀돌도끼, 돌대팻날, 돌끌, 간석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하문식 |
설명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에 위치한다. 팔당댐 수몰 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1972년 연세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98년에는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4기의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다. 남한강의 강굽이 현상으로 형성된 충적 대지에 위치하며 강 흐름을 따라 400m 범위 내에 1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다.
1972년 발굴된 고인돌은 ‘ᄃ 21호 고인돌’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덮개돌(上石)의 재질은 견운모 편암(絹雲母片岩)이고 크기는 길이 2.2m, 너비 1.7m, 두께 0.5m이다. 덮개돌은 가장자리를 많이 손질하였다. 윗면에는 많은 알 구멍(性穴)이 파여 있는데 크기는 지름이 2~11.5㎝로 여러 가지이다. 무덤방(墓室)은 가장자리에 받침돌(支石)이 둘려져 있으며 부분적으로 자갈을 쌓았다. 그리고 받침돌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쐐기돌을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무덤방 안에서는 묻힌 사람의 손목뼈와 발목뼈가 출토되었으며 주검(屍身)의 위·아래에 붉은 흙을 의도적으로 뿌렸음이 밝혀졌다. 뼈로 보아 묻힌 사람의 머리 방향(頭向)은 남서쪽이고 장축 방향은 강물의 흐름과 나란하다. 출토 유물은 천공구(穿孔具), 뗀 돌도끼(打製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끌(石鑿), 간석기 등이다. 고인돌 중 하나가 연세대학교 역사의 뜰에 옮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