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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1825: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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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심귀리 유적(時中 深貴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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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시중 심귀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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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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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심귀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시중 심귀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자강도 시중군 심귀리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기둥 구멍, 돌 두름식, 돌도끼, 반달 돌칼, 항아리 모양 토기, 독 모양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자강도 시중군 심귀리에 위치한다. 독로강 발전소 건설 과정에 발견되어 1958년에 발굴 조사하여, 고구려 시기 무덤과 철기 시대 문화층 아래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3기를 확인하였다. 심귀리에는 독로강 중류에서 가장 넓은 벌판 지대가 펼쳐져 있고 유적은 심귀리 벌판 끝 쪽 강안에 위치한다.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가까이에 로남리 남파동 유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바닥은 모래층을 그대로 이용하고 주춧돌(礎石)이 놓여진 곳만 진흙으로 다졌다. 1호는 크기가 잔존 길이 7.8m, 너비 7.5m, 깊이 0.6~8m로 내부에는 장축 방향을 따라 기둥 구멍과 주춧돌이 나란히 3개씩 배치되고 화덕 자리 북쪽의 짧은 벽에도 주춧돌이 하나 있다. 화덕은 바닥에 돌 1매를 깔고 장방형으로 돌을 둘린 돌 두름식(圍石式)으로 북쪽에 약간 치우쳐 있다. 3호는 1호 서남쪽 모서리를 파괴하고 축조하였다. 2호는 길이 1,1m, 너비 8.6m로 90㎡가 넘는 대형이다. 기둥 구멍이 네 모서리에 있고 장축 방향을 따라서 주춧돌이 두 줄로 놓여 있다. 화덕 자리는 북쪽 짧은 벽 가까이에 위치하는데 1호와 같은 돌 두름식이다. 동남쪽 벽에는 바닥보다 조금 높게 만든 출입구 시설이 있다.

유물은 돌도끼, 장방형 반달 돌칼, 돌끌(石鑿), 달도끼(環狀石斧), 돌낫(石鎌),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슴베 없는 간 돌살촉 등의 석기와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 흙을 구워 만든 그물추가 있다. 토기들은 강계 공귀동 유적에서 나온 것들과 닮았다.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등 여러 기형으로 몸통이 대단히 넓고 팽이 토기(角形土器)의 아랫 부분과 닮은 것, 닭 벼슬 모양 손잡이(鷄冠形把手) 또는 그 위에 작은 꼭지가 달린 것, 목(頸部)에 돋을띠무늬(突帶文)를 돌린 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 토기들은 높이 40~50㎝의 큰 것과 20~30㎝의 중간형이 있고, 1호 집자리 바닥에 박혀 있는 그릇에는 도토리가 가득 담긴 채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1호와 2호 집자리는 유물 갖춤새로 보아 시기가 다른 것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심귀리 유적은 중강 토성리 유적, 강계 공귀동 유적과 함께 압록강 중상류 지역의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