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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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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동리 유적(益山 信洞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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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익산 신동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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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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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신동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익산 신동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춘포면 신동리 192-1·19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움무덤, 삼각 덧띠 토기, 한국식 동검, 칼자루 끝 장식, 꺽창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양영주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신동리 192-1·194 일원에 위치한다. 익산 신동리 간이 골프장 시설 공사에 앞서 1997~1998년(1차), 2001~2002년(2차)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의 오금산(125m)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내려온 능선의 낮은 구릉상에 분포하고 있다. 7개 지점 가운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관련 유적이 확인된 곳은 1·6·7지구이다. 1지구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2기, 7지구에서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2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구릉의 동쪽 말단부와 중단부에 단독으로 조성되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으로 한변의 길이가 3m 내외로 비교적 소형이며, 2동 모두 바닥을 불 다짐 처리하였다. 내부 시설로는 2호 집자리 벽 쪽에 정형성 없는 기둥 구멍과 바닥 중앙부에 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爐址)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1호 집자리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口脣刻目土器) 편, 미완성 석기, 토제 그물추, 2호 집자리에서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은 6지구에서 1기, 7지구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해발 25m 구릉 능선부(6지구 1호, 7지구 1호)와 사면부(7지구 2호)에 분포한다. 7지구 움무덤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부장품에서 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덤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며 나무널(木棺)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무덤의 장축은 6지구의 1호는 동서 방향, 7지구 움무덤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유물은 6지구 1호 움무덤에서 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塗長頸壺), 7지구 1호 움무덤에서 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민무늬 토기 바닥 편, 한국식 동검(細形銅劍), 칼자루 끝 장식(劍把頭飾), 쇠도끼(鐵斧), 7지구 2호 움무덤에서는 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쇠새기개(鐵鉈)가 출토되었다.

신동리 유적은 발굴 조사에 앞서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꺾창(銅戈) 1점과 덧띠 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꺾창은 한국식 동검 문화의 발전기에 나타나는 표식적인 유물로 신동리 유적 움무덤은 한국식 동검 문화에서 철기 문화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유적의 연대는 전국계 철기 문화가 유입되고 둥근 덧띠 토기가 소멸되는 기원전 2세기 전반대 또는 기원전 2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