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1710: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600-171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1710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승리산 동굴 유적 | | 한글표제어=승리산 동굴 유적 | ||
| 이칭별칭=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 | 이칭별칭=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덕천 승리산 동굴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기슭 |
| 관련 정보 | |
| 성격 | 동굴 |
| 키워드 | 집자리, 무덤, 화덕 자리, 사람 뼈, 사람 화석, 동물 화석, 미송리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 기슭의 석회암 동굴에 위치한다. 1972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사람 화석을 비롯하여 2,000여 점의 동물 화석과 유물을 확인하였다. 덕천은 대동강 상류에 있으며 서북쪽에서 시량강이 대동강으로 흘러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청송강이 흐르고 있으며, 승리산은 시량강과 청송강 사이에 솟아 있으며, 자연 동굴이 여러 개 있는데 동남쪽 비탈에 있는 동굴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동굴은 대동강의 두 번째 단구(段丘)에 해당하며 하상으로부터 17~18m 높이에 있다. 동굴은 동남향으로 열려 있어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굴 안 쌓임층은 5~10m 두께로 동굴 앞쪽에서 보면 6개 층으로 나뉜다, 아래로부터 모래층-모래자갈층-황색찰흙층-적갈색 강자갈층-석회암 낙반석 모래층-모난 석회암 낙반석층의 순서로 쌓여 있다.
청동기 시대 문화층은 동굴 입구 쪽에 후대의 유물들과 교란되어 남아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주로 동굴 밖을 생활 공간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무덤은 동굴안 동북쪽 구석에서 지표 밑 0.5m에서 드러났다. 사람 뼈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고 돌살촉, 조가비(貝殼), 옥(玉) 등이 함께 있었다. 무덤의 구조는 일부 남아 있는데 길이 1.6m, 너비 0.5m, 깊이 0.1~0.15m이다. 길이 0.2m 정도의 작은 석회암 돌들을 2~3겹 쌓아 놓고, 바닥에는 벽에 이용한 돌보다 절반 정도 작은 돌들을 깔고 그 위에 흙을 5㎝ 두께로 깔았다. 주검(屍身) 위에도 돌을 덮어 만든 것이다. 유물은 조개껍질 3점, 옥구슬 1점이 나왔다.
집자리는 무덤 아래쪽에서 나타났는데, 동굴 바깥쪽이 패어 나갈 때 유실되어 규모는 알 수가 없다. 집자리 가장자리에 0.1~0.15m 가량의 돌들이 둘러져 있으며, 앝은 움을 파고 바닥은 흙을 펴서 고르게 다졌다. 화덕 자리는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네모난 돌을 깔아(敷石式) 만 들었다. 다른 집자리는 앞의 집자리보다 0.3~0.4m 아래에서 확인되었는데, 길이는 5m 정도로 추정된다. 화덕은 길죽한 깬돌을 원형으로 한 벌 깔고 흙을 돌아가면서 바른 형식이다. 유물은 표주박 모양의 미송리식 토기를 비롯하여 빗 모양(櫛形) 반달 돌칼, 돼지 이빨로 만든 칼, 미완성 돌살촉 등이 나왔다. 청동기 문화층에서 사람 뼈는 11명분의 것이 나왔으나 온전하게 나온 것은 많지 않았고, 그 밖에 19종의 젖먹이 짐승뼈와 연체 동물 어류 화석 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