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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평택 수월암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수월암리 202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반송리식 집자리, 송국리 유형,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서길덕 |
설명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수월암리 2022 일원에 위치한다. 2011년 공장 신축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집자리14기, 구덩이 1기, 고인돌 24기, 추정 채석장 1개소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해발 36~37m 구릉의 마루와 비탈에 분포하며, 평면 형태를 알 수 있는 것 중에는 세장방형 1기, 장방형 1기, 방형 8기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타원형 구덩이, 기둥 구멍이 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과 구덩식이 관찰되며, 주로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만 확인되나 방형으로 추정되는 2지점 4호 집자리에도 1개 있다.
기둥 구멍은 (세)장방형 집자리에서는 정형성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방형 집자리에서는 1주식, 2주식, 4주식이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는 대체로 집자리 중앙에 서 확인되며 저장 구덩이보다 규모가 크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는 대석(臺石)으로 추정되는 돌이 놓여 있거나 주변에 다량의 석재 편이 노출되어 있는 등 작업용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타원형 구덩이는 2주식의 경우 중앙축 선상에서 벗어나 있으며, 4주식에서는 중앙에 위치한다. 따라서 2주식은 반송리식 집자리로 볼 수 있고, 4주식은 송국리 유형에 해당한다.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구릉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말 안장 모양의 평탄면(해발 59~60m)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 및 무덤방의 주축은 능선의 진행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유적 동편에 흐르는 오산천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총 24기의 고인돌 가운데 덮개돌이 확인된 고인돌은 12기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대형에서부터 소형까지 다양하며, 가장 작은 것들은 길이 37~50㎝, 너비 19~37㎝로 나타난다.
고인돌의 상부 구조는 탁자식(1·2·4·10호)과 덮개식으로 나뉜다. 무덤방은 돌방형, 돌널형, 구덩형으로 구분된다. 또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지상식과 지하식으로 나눌 수 있다. 지상식은 1·2·9호 고인돌이며, 3기를 제외한 나머지 21기는 지하식으로 판단된다.
한편, 다수의 고인돌 무덤방 속에는 다량의 숯과 재가 들어가 있고 재 속에는 화장 후 남은 작은 사람 뼈 조각들이 확인된다. 따라서 수월암리 고인돌의 주된 장법은 화장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화장 무덤은 주변의 평택 토진리 유적 및 안성 만정리 신기 유적과 비교 가능하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간 돌검(石劍) 1점, 돌살촉(石鏃) 6점, 홈자귀(有溝石斧) 1점, 반달 돌칼 1점, 돌칼(石刀) 1점, 가락바퀴 1점이 나왔다.
추정 채석장은 2지점 구릉 봉우리(해발 66m)의 남서쪽 비탈(해발 54~64m)에서 확인되었다. 구릉 봉우리에 가깝게 세 개의 큰 암석이 노출되어 있고 쐐기흔으로 추정되는 홈들이 암석의 모서리 부분에서 관찰된다. 또한 그 아래 비탈에는 원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바위 아래에 돌더미가 두텁게 쌓여 있다. 특히 돌더미 아래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다수 발견되었다.
방형 집자리 5기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연대 측정은 2330±40 BP~500±40 BP, 고인돌 10기에 대한 측정값은 2180±60 BP~2490±40 BP로 도출되었다. 이를 역연대로 환산했을 때 중심 연대는 대략 기원전 7~5세기에 해당한다.
수월암리 유적은 거주 공간과 무덤 공간이 함께 조사되었으며 고인돌의 채석장도 확인된 점에서 청동기 시대 마을의 구성을 검토할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