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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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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수영리 유적(華城 水營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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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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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수영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화성 수영리 유적, 화성 동화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49-1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화성 수영리 유적, 화성 동화리 유적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형원



설명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49-16 일원에 위치한다. 2006년 서수원-오산-평택 고속 도로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움무덤(土壙墓) 1기,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조선 시대 회곽묘(灰槨墓) 1기, 근대 움무덤 1기, 시대 미상의 도랑 13기 및 구덩이 21기 등을 확인하였다. 이 밖에 구석기 시대 뗀석기도 수습하였다.

청동기 시대 움무덤은 낮은 구릉 정상부 평탄지의 해발 34.5m 지점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이지만, 북쪽 짧은 벽은 반원형의 형태로 둥글게 돌아간다. 무덤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며 주축은 남북 방향에 가깝다. 규모는 길이 1.87m, 너비 0.65m, 깊이 0.14m 내외이다. 움무덤 내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재와 숯이 확인되었으며 벽체 일부와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바닥 면은 불탄 상태로 비교적 단단하게 소결(燒結)되어 있다.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는 소량의 사람 뼈 편이 확인되었는데, 무덤에 묻힌 사람의 뼈로 추정된다. 무덤에 서는 부장품으로 슴베 없는 간 돌살촉(三角灣入石鏃) 2점이 나왔다. 간 돌살촉은 2점 모두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유적의 연대는 움무덤의 목탄 시료 3점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10~9세기, 기원전 11~9세기, 기원전 12~10세기로 도출되었다. 소결된 흔적, 목탄과 사람 뼈의 양상 등으로 볼 때 화장묘(火葬墓)로 판단되는데, 경기 남부 지역에서는 평택 토진리, 안성 공도, 광주 역동 유적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것은 청동기 시대 장제(葬制)연구에서 주목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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