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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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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송학리 유천 고인돌군[羅州 松鶴里유천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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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나주 송학리 유천 고인돌군, 송학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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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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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송학리 유천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나주 송학리 유천 고인돌군, 송학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송학리 37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두름형 무덤방, 돌널형 무덤방, 붉은 간 토기, 삼각 덧띠 토기, 돌살촉, 돌도끼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조진선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송학리 378 일원에 위치한다. 나주 남양골프장 조성 부지에 포함되어 2007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이 일대는 산지가 발달된 지형으로 해발 150~200m인 국사봉, 각시봉, 덕룡산 등의 봉우리가 감싸고 있다. 고인돌군은 해발 65~70m에 위치하는데, 계곡부가 합류되는 지점이다. 송학리에는 유천 고인돌 가군과 나군이 있었는데, 나군은 시굴 조사 결과 고인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송학리 유천 고인돌 가군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던 덮개돌(上石) 1기 주변에서 26기의 고인돌이 추가로 확인되어 모두 27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군은 비교적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형성된 곡간 평지에 자리한다. 조사 당시 고인돌은 12호 덮개돌만 노출되어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26기의 고인돌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이 11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이 7기, 하부 구조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 9기이다. 전체적인 군집 형태는 북서-남동 방향이어서 계곡 방향과 일치한다. 3개의 소군집으로 나누어지는데, 1군집은 1~5호이고, 2군집은 9~16호이며, 3군집은 21~27호이다. 그중 12호 고인돌은 가장 동쪽에 단독으로 조영되어 있다. 2군집의 하부 구조는 동서 방향이지만 3군집은 남북 방향으로 열을 이룬다. 1군집은 교란되어 심하게 파괴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이 많으며, 무게는 대부분 5톤 이하이지만 12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77톤으로 초대형이다. 12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초대형일 뿐 아니라 한 쪽에 치우쳐 있고 무덤방 없이 큰 받침돌(支石)만 둘러져 있어서 묘역(墓域)을 표시하거나 묘역 집단의 상징적인 기념물로 추정된다. 받침돌은 무덤방 외곽에 둘러져 있는 것과 받침돌만 둘러져 있는 것이 있다. 14호 고인돌에서는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었는데, 지하에 돌널형 무덤방을 축조하였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남-북이 기본이지만, 3군집의 일부는 북서-남동, 북동-남서이다. 무덤방은 돌 두름형(圍石形)와 돌널형(石棺形)가 있는데, 대부분 돌 두름형이다. 돌 두름형은 무덤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묘역석(墓域石)보다 큰 대형 석재들을 둘러 받침돌 겸 무덤방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돌널형은 판돌(板石) 여러 매로 짜 맞추어 축조하였다. 바닥 시설은 돌널형 무덤방을 갖춘 14호 고인돌에서만 확인되는데, 남쪽 짧은 벽 쪽 절반 정도에만 깬돌을 깔았다. 묘역 시설은 원형이나 타원형인데, 12호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인돌에서 확인되었다. 묘역 시설의 가장자리는 석재를 눕혀 깐 것과 세워 깐 것이 있다. 무덤방의 중복 관계로 보아 1군집과 3군집이 먼저 축조되었고 이후에 2군집이 조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와 석기가 있지만 매우 빈약하다. 토기로는 민무늬 토기 편 2점과 붉은 간 토기 편 3점, 삼각 덧띠 토기(三角形粘土帶土器) 1점이 있다. 석기는 돌살촉(石鏃) 1점, 돌도끼(石斧) 1점 등이다. 토기 편들은 고인돌 주변이나 돌널 내부 퇴적토에서 확인되었다. 삼각 덧띠 토기는 11호 고인돌의 깨진 덮개돌들 사이에서 출토되었다. 덮개돌이 이미 이동된 상태여서 고인돌과 직접 관련시키기 어렵다.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는 13호 돌널의 남서쪽 묘역 시설에서 출토되었고 외날 돌도끼는 14호 묘역 시설 북동쪽에서 출토되었다.

송학리 고인돌군은 전체적으로 보아 돌돌림형에서 돌널형으로 변화하였지만 형식별로 연대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