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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8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익산 서두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서두리 277-18·951-2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무덤유적 |
| 키워드 | 독무덤, 항아리 모양 토기, 외반 구연의 송국리식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박서현 |
설명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서두리 277-18·951-21 일원에 위치한다. 익산-광주 간 호남 고속 철도 건설에 따라 서두리 1유적은 2010년, 서두리 2유적은 2010~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주변 지역에는 나지막한 구릉이 발달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곡간지(谷間地)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미륵산(彌勒山)에서 발원한 기양천이 곡간지의 중앙부를 흐른다. 두 유적은 약 500m 떨어져 있으나 같은 구릉에 위치한다. 서두리 2유적에서 1km 거리에는 송국리식 집자리 가 확인된 익산 보삼리 유적이 있다.
서두리 1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독무덤(甕棺墓)3기, 초기 철기 시대 구덩이·움무덤(土壙墓) , 2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움무덤 2기·독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구석기 시대, 삼국 시대, 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독무덤은 구릉 사면부에 위치한다. 1·2호는 구릉 서사면에 3m 이내로 인접하여 위치하며 3호는 60m 떨어진 구릉 남사면에 위치한다. 무덤 구덩이는 모두 벽면을 비스듬히 굴착하였으며 단면은 완만한 ‘U’자 모양이다. 1호는 지름 0.6~0.75m, 잔존 깊이 0.4m이고 2호는 지름 0.45~0.48m, 깊이 0.25m, 3호는 지름 0.65~0.9m, 깊이 0.35m이다. 독널은 모두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를 사용하였으며,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 토기 이다. 1·2호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독널을 수직으로 안치直置하였다. 반면 3호는 독널을 비스듬히 안치斜置하였다. 상부가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는 2호를 제외하면 모두 돌을 이용하여 독널의 뚜껑을 덮었다. 1호는 갈판硏石 으로 사용되던 석재를 뚜껑으로 사용한 반면, 3호는 자연석이지만 뚜껑돌로 이용하기 위해 일부를 다듬어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독널 과 뚜껑돌을 제외하고는 출토되지 않았다. 다만 독널에는 외면에 흑반黑斑 이 넓게 형성되어 있고 뚜껑돌로 사용된 갈돌도 완만한 굴곡이 있어 일상용으로 사용하다가 무덤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모두 구릉 사면 상단부에 위치한다. 두 기의 움무덤은 2.5m 거리를 두고 있으며, 독무덤은 13.5m 떨어져 위치한다. 움무덤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고 모두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다. 1호 움무덤은 길이 1.44m, 너비 0.52m, 잔존 깊이 0.1m이고, 2호는 길이 1.41m, 너비 0.39m, 깊이 0.06m이다. 바닥에 민무늬 토기 를 깔아 시설하였으며, 바닥에 깐 토기는 1개체로 추정된다. 독무덤은 삼국 시대 집자리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뚜껑돌로 추정되는 판돌으로 볼 때 돌뚜껑을 덮었던 독무덤으로 추정된다. 잔존 길이 0.32m, 잔존 너비 0.62m, 잔존 깊이 0.24m이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출토 유물은 1호 움무덤 구덩이 내부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가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