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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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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분황리 유적(尙州 分皇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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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상주 분황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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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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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8 판


분황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상주 분황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분황리 1060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도랑, 구덩이, 기둥 구멍, 홈자귀, 돌도끼, 민무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윤호필



설명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분황리 1060 일원에 위치한다. 분황1지구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부지 조성에 앞서 2010년 조사하여 고인돌 1기, 고인돌 덮개돌(上石) 11개, 도랑(溝) 1기, 구덩이 5기, 기둥 구멍 2개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상주시의 동쪽 외곽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장천(長川) 변의 충적 대지에 분포한다.

고인돌은 덮개돌받침돌(支石)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무덤방(埋葬主體部)은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은 사다리꼴(梯形)로 남면, 북면, 서면, 바닥면이 다듬어져 있고, 주축 방향은 남북향이다. 재질은 화강암재로 약 25톤이며, 길이 2.9m, 너비 2.1m, 높이 2.1m이다. 받침돌은 덮개돌 아래에서 확인되며, 남쪽 모서리와 중단부에 각각 2개씩 총 4개가 설치되었다. 받침돌의 윗면은 편평하게 놓았으며, 1개의 크기는 길이 0.3~0.5m이다. 내부 공간에서 홈홈자귀(有溝石斧) 편, 돌도끼 편, 민무늬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덮개돌 11개가 모여 있다. 방형, 장방형, 사다리꼴 등 다양하며, 길이 1.3~3.2m, 너비 0.65~2.1m, 두께 0.7~1.7m이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주변 경지 정리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모아둔 것이라 한다.

도랑은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길이 15m, 너비 2.5m, 깊이 0.08m이다. 자연 유수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구덩이와 기둥 구멍은 고인돌 주변과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확인된다. 구덩이는 지름 0.7~1.2m 내외, 기둥 구멍은 지름 0.4m 내외이며 깊이는 얕다. 이중 4호 구덩이는 고인돌 남쪽에 인접해 위치하며, 내부에는 깬돌(割石)로 채워져 있다. 구덩이와 기둥 구멍은 고인돌과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구조와 배치 형태로 볼 때 고인돌 축조나 이후에 행해진 의식과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

고인돌의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에 집자리가 확인되지 않고 많은 덮개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은 무덤 공간으로 추정된다. 또한, 덮개돌 아래에 매장 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무덤보다는 무덤 공간을 알리는 묘표적(墓表的) 성격이거나 집단의 공동 집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적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