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185: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18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18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봉산리 유적(龜尾 鳳山里遺蹟)
| 한글표제어=봉산리 유적
| 이칭별칭=구미 봉산리 유적
| 이칭별칭=구미 봉산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17 판


봉산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구미 봉산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읍 봉산리 217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돌널무덤, 돌칼, 가락바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도헌



설명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읍 봉산리 217에 위치한다. 구미 국가 산업 단지 제4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02년 조사하여 Ⅱ구역에서 돌널무덤(石棺墓) 4기를 확인하였다. 이외에 Ⅰ~Ⅲ구역에서 삼국~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야트막한 구릉지의 남동쪽 비탈면(斜面) 가운데 높은 지점(해발 56~58m)에서 확인되었으며,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규모는 확인이 가능한 상태였다. 무덤은 좁은 범위에 위치하며, 13·14호는 1.5m 간격으로 나란하고, 15·20호는 4~6m 떨어져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장축 방향이 모두 등고선과 평행하다. 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고, 가장 큰 것은 길이 2.27m, 너비 1.12m, 깊이 0.22m, 가장 작은 것은 길이 1.49m, 너비 0.59m, 깊이 0.13m이다. 바닥에는 자갈을 깔거나 널돌(板石)을 놓아서 주검 받침(屍床)을 만들었다. 벽은 깬돌(割石)을 쌓거나 널돌을 세워서 만들었으며, 규칙성은 확인할 수 없다. 뚜껑돌(蓋石)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나무 덮개(木蓋)를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 유물은 14호에서 미완성 돌칼(石劍), 20호에서 돌로 만든 가락바퀴가 확인되었다. 미완성 돌칼은 가장자리를 여러 번 떼어내고 한쪽 끝을 뾰족하게 만든 모양이다. 가락바퀴는 돌을 세밀하게 갈아서 만들었으며 가운데 구멍은 양쪽에서 뚫었다.

유적은 구미 지역의 청동기 시대의 구조와 장송 의례(葬送儀禮)를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