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158: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15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158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복산리 마산 고인돌군[麗水 福山里支石墓群]
| 한글표제어=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 이칭별칭=여수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마산·화동 유적
| 이칭별칭=여수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마산·화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17 판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여수 복산리 마산 고인돌군, 마산·화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돌덧널형 무덤방, 자루 간 돌검, 통자루 간 돌검, 상평통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세미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복산리 산164 일원에 위치한다. 현천-마산 간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6~2007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5기의 고인돌(다군)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마산 마을에서 덕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있으며, 이 일대는 해발 183~215m 정도이다.

고인돌은 덮개돌(上石)과 하부 구조가 모두 남아 있는 것 1기와 덮개돌만 남아 있는 것 2기, 하부 구조만 남아 있는 것 2기이다. 1호 고인돌은 군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다. 덮개돌과 매장 주체부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무덤방(墓室)과 받침돌(支石) 사이에는 깬돌(割石)을 깔아 받침돌과 함께 덮개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덤방은 돌덧널형(石槨形)이며, 바닥에는 작은 깬돌(割石)을 촘촘하게 깔았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이다. 2-1호 고인돌은 무덤방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바닥석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방은 돌덧널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남-북인데, 주변이 심하게 교란되었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만 남아 있는데, 이동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다. 4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다. 바닥은 양 짧은 벽 쪽에만 작은 깬돌을 촘촘하게 깔았다.

2-1호 고인돌 주변에서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1점이 수습되었다. 4호 고인돌 바닥 중앙에서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위치로 보아 시신을 안치한 후 피장자의 허리 쪽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호와 3호 덮개돌 아래에서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수습되었다.

복산리 고인돌군은 무덤방이 모두 돌덧널형이며, 통자루 간 돌검이 부장되었다는 점에서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인돌 아래에서 상평통보가 확인되어 고인돌이 후대에도 거석 숭배나 신앙과 관련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