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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방지리·유천리 유적(泗川 芳芝里·柳川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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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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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7 판


방지리·유천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사천 방지리·유천리 유적, 사천 방지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방지리 650, 유천리 8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돌널무덤, 독무덤, 집자리, 구덩이, 조개더미, 덧띠 토기, 독 모양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토기, 가락바퀴, 그물추, 돌살촉, 숫돌, 간 토기, 판상철부, 환호, 토루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고민정



설명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방지리 650, 유천리 8 일원에 위치한다. 서부경남 첨단 지방 산업 단지 조성에 앞서 2002~2003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지구)와 경상대학교박물관(나지구)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가지구에서 돌널무덤(石棺墓) 2기, 독무덤(甕棺墓) 1기, 집자리 21기, 구덩이 69기, 도랑(溝) 25기, 조개더미(貝塚) 2개소, 유물 포함층 3개소가 확인되었다. 나지구에서는 조개더미 2개소, 구덩이 6기, 도랑 4기, 소성 유구 3기, 돌널무덤 4기, 석렬(石烈)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사천만에 접한 낮은 독립 구릉으로 방지 마을에서 당산으로 불리며, 사천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사천만은 교통로 상에서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집자리는 유적의 남동쪽 해발 14~24m의 구릉 정상부 가까이에 입지하며, 2~4기 정도가 모여 작은 군집을 이룬다. 방형, 원형, 타원형으로 구분되며, 둥근 덧띠 토기(圓形粘土帶土器)가 14기에서 확인되었고, 삼각 덧띠 토기가 7기에서 출토되었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고래,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중앙부 또는 한 쪽편에 약간 치우쳐 설치되며 고래 시설은 경사면 쪽으로 부뚜막 시설을 하고 벽을 따라 판돌을 세워 터널형으로 만들었다. 고래의 바닥과 벽 쪽에는 화기에 의해 소결되었다. 벽 도랑은 타원형과 원형 집자리에서 확인되며, 경사면 위쪽에 벽을 따라 일부분만 설치되었다. 유물은 덧띠 토기, 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가락바퀴, 그물추, 돌살촉,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주거 구역과 떨어진 동쪽 사면의 북쪽 아래 해발 4~7m에 분포한다. 규모와 배치 형태에 따라 길이 1m 이하의 소형 돌널무덤과 1.6m 이상으로 나뉘며 일정 간격으로 열지어 분포하거나 단독으로 위치한다. 소형 돌널무덤은 환호 밖에 일정 간격으로 열지어 환호와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어 환호를 인식하고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호는 단독으로 위치하는데 타원형의 묘역 시설을 갖추고 있다. 2호는 판돌(板石)로 축조하였고 이중 뚜껑돌(蓋石)을 덮었는데, 내부에서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집자리 밀집 지역에 구덩이와 중복되어 위치한다. 둥근 덧띠 토기의 독 모양 토기를 바로 세우고, 판돌 두겹을 뚜껑돌로 덮었다. 독무덤은 송국리식 돌널과 유사한 구조로 이전 시기의 형식과 구조를 계승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집자리와 구덩이, 도랑, 조개더미 주변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형태, 규모, 내부 출토 양상을 통해 대부분은 폐기장으로 기능하였고, 일부는 소성 유구, 야외 화덕 자리, 의례 유구 등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랑은 크게 대형과 중소형 도랑으로 구분된다.

대형은 등고선과 직교하고, 중소형은 나란한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대형은 유적의 동쪽 사면에 위치하며, 내부에서 작은 토기, 간 토기(磨硏土器), 대형 토기, 원형 토제품, 판상철부(板狀鐵斧) 등이 출토되고 다량의 목탄과 불탄 흙이 확인되어 의례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93호 대형 도랑에서 출토된 판상철부는 일종의 매납 의례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101호 대형 도랑은 길이가 길고 단면은 완만한 ‘U’자 모양이며, 내부에서 목탄과 재, 불탄 흙이 집중적으로 층을 이루고, 유물과 깬돌에도 불탄 흔적이 확인되어 소성 유구로 재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환호는 구릉의 동남단에서 동북단까지 사면 말단부(해발 7~11m)에 2열로 설치되어 있으며, 일부 중복되어 있다. 두 환호는 약 6~7m 거리에 위치하며, 높이 차이는 약 2m 정도로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어 동 시기에 존재한 이중 환호로 판단된다. 환호의 길이는 약 350m로 유적의 서쪽, 남쪽과 북쪽 일부의 급경사면을 제외한 구릉 전체를 감싸고 있다. 환호 내외부의 매몰토 및 깬돌 출토 양상을 통해 환호 조성과 동시에 토루를 성토하고 토루 외면은 깬돌을 이용하여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지리 유적은 해안의 고립구릉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구릉 내에 다시 경계와 방어를 위한 환호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환호 내부에서는 둥근 덧띠 독 모양 토기, 바리 토기,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뚜껑(蓋), 쇠뿔 손잡이(牛角形把手), 고리 모양 손잡이(環形把手), 돌창(石槍), 간 돌도끼(磨製石斧), 숫돌, 그물추, 동물 뼈(사슴의 상완골, 돼지 하악골 치아) 등이 출토되었다.

조개더미는 구릉의 북서쪽 곡부(A조개더미), 구릉 중앙부(B조개더미)와 남동쪽 사면부(Ⅰ조개더미), Ⅱ조개더미의 4개소에서 확인되었으며, 집자리와 떨어져 위치한다. A조개더미는 길이 100m, 너비 50m로 대규모이다. 두께는 가장 깊은 곳은 1.6m로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용되었다. A조개더미가 위치한 곳은 다른 공간과 지형적으로 구분되는 특별한 공간으로써, 의례 공간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조개더미 내부에서는 작은 토기, 원판형 석기, 굽다리 토기 등 다양한 의례 유물과 동물 뼈, 목탄 및 불탄 흙이 출토되었다. 남동쪽의 Ⅰ·Ⅱ조개더미는 환호의 출입 시설의 양쪽에 위치하는 특징을 보이며, 구릉 중앙부 조개더미와 함께 소규모이다. A조개더미의 층위는 7개층으로 구분되며, 이 중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은 1~3층이다. 1층은 다시 세분되어 1-1층은 삼각 덧띠 토기, 1-2층은 삼각 덧띠 토기가 사라지고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 1-3층은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된다. 패각층 변화는 순패각층(3층)→목탄+재+패각층, 황토(간층)(2층)→순패각층(1-3층)→목탄+재+패각층(1-2층)→혼토패층(1-1층)으로 변화한다.

유적은 취락 구성 요소와 출토 유물을 통해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둥근 덧띠 토기 단계로 집자리, 무덤, 구덩이, 도랑, 환호, 조개더미 등 취락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지형에 따라 공간을 달리하면서 조성되었다.

특히, 환호는 당시의 사회적 긴장 관계를 대변하는 유구로 이중의 환호와 토루를 설치하여 방어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2단계는 둥근 덧띠 토기가 쇠퇴하고 삼각 덧띠 토기가 형성되는 과도기적 시기로 두 문화가 일정 기간 공존한 것으로 보인다. 3단계는 삼각 덧띠 토기 단계로 환호를 제외한 집자리, 구덩이, 도랑, 조개더미가 축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취락이 만들어 진다. 방지리 유적은 둥근 덧띠 토기에서 삼각 덧띠 토기 문화로의 이행이 확인된다. 또한, 늑도 유적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덧띠 토기 단계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시굴조사 2001년 9월 12일~2001년 11월 30일 사천 방지리 나지구 유적 2007 경상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2002년 9월 25일~2002년 11월 8일 사천 방지리 나지구 유적 2007 경상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