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747: 두 판 사이의 차이
보이기
dkamaster 600-0747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
dkamaster 600-0747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 한글표제어=돌보습 | | 한글표제어=돌보습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 관련 유적=여주 흔암리 유적 | | 관련 유적=서울 암사동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녕변 세죽리 유적, 여주 흔암리 유적 | ||
| 키워드=[[보습]] | | 키워드=[[보습]]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13:16 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서울 암사동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녕변 세죽리 유적, 여주 흔암리 유적 |
| 키워드 | 보습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돌보습은 쟁기나 끌쟁기의 술바닥에 맞춰 쓰는 삽 모양의 연장을 말한다.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뿌리기 위하여 땅을 갈아엎는 데 썼다. 신석기 시대 유적인 서울 암사동, 지탑리 유적에서 나온 신발 모양의 석기들을 보습으로 보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녕변 세죽리 유적과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돌보습은 길이 50~60㎝, 너비 15~25㎝에 이르는 큰 것도 있고, 길이 30~40㎝로 약간 작은 것도 있으며 두께는 대체로 2~3㎝ 정도 된다. 날을 갈지 않고 쓴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것들은 날을 갈아 만들었다. 선사 시대 돌보습은 앞에서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끌고, 뒤에서 한 사람이 조정하는 방식으로 사용했으나, 가축을 부리게 되면서 그 힘을 빌어 밭갈이 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