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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15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덕천 남양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고인돌, 팽이 토기, 비파형 청동 투겁창, 단추, 청동 방울, 거푸집, 오덕형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에 위치한다. 1994년에 군인들이 토목 공사를 하면서 유물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1998년까지 5년 동안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 31기, 고인돌 4기, 신석기 시대 집자리 2기, 고구려의 돌방흙무덤(石室封土墳) 23기,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7기를 확인하였다.
팽이 토기 시기의 집자리는 중복 관계와 유물 갖춤새로 보아 4개 시기로 구분된다. 중복 집자리의 예는 아래층에서부터 15호→14호→13호, 23호→20·21호→22호 순으로 각각의 내부시설인 화덕 자리의 수와 기둥 구멍의 배치 양상에서 차이가 있다. 15호는 길이 6m, 너비 4m, 깊이 0.2~0.3m이며 내부에는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평면 육각형의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가 있으며, 기둥 구멍은 확인되지 않으나 가장자리에 기둥 그루가 확인된다. 14호는 길이 6.9m, 잔존 너비 4m, 깊이 0.2~0.3m이며, 내부에는 돌 두름식 화덕 1기가 있다. 또한 중심축 상에 기둥 구멍 2개가 1열로 있고, 벽 가장자리와 모서리에는 기둥 그루가 다수 확인된다. 13호는 길이 7.5m, 너비 5.4m, 깊이 0.3~0.4m로 내부에는 돌 두름식 화덕 2기가 있다. 기둥 구멍과 기둥 그루는 벽 가장자리를 따라 다수 확인된다. 이를 정리하여 시기를 구분하여 보면, 제1기의 집자리는 화덕이 1기 있고 벽 가장자리에 기둥 그루와 구멍이 있다. 제2기는 벽 가쪽과 장변 중심선에 기둥이 있는 형태이며, 화덕은 1기 있다. 제3기의 기둥 배열은 2기와 같으나 화덕이 2기 있는 것이고, 제4기는 화덕 2기가 있고, 주춧돌(礎石)이 있는 것들이다.
유물은 1기 집자리에서는 간 돌검과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달도끼(環狀石斧), 그물추, 가락바퀴,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등의 석기와 팽이 토기가 있다. 2기에서는 팽이 토기가 다수이며, 일부 조롱박 모양의 단지인 묵방리식 토기가 있다. 3기 16호 집자리에서는 비파형 청동 투겁창(琵琶形銅矛) 끝과 원반형 단추(銅瞿)가 나왔는데, 비파형 청동 투겁창 끝은 상원 룡곡리 5호 고인돌, 호남리 집자리 유적 10호 집자리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다. 20호 집자리에서는 단추 모양의 청동기가 5점이 인골 위에서 출토되었는데, 모두 지름 5.5㎝로 하나의 거푸집을 이용한 것이다. 제4기에서는 청동 방울(銅鐸) 거푸집이 보이며 목이 달린 팽이 토기가 있다.
고인돌은 4기를 발굴하였으나 3기는 파괴되어 하부 구조는 없었다. 3호 고인돌은 덮개돌(上石)은 남아있지 않고 2매의 받침돌(支石)이 장축 방향을 남북으로 두고 놓여있다. 받침돌 사이에는 납작하고 네모난 강돌(川石)들로 담장을 쌓듯이 쌓아 올려 북벽과 남벽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1단의 돌들이 확인된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1.8m, 너비 1.3m, 깊이 1m이다. 무덤방 바닥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흙을 펴서 시설하였다. 오덕형 고인돌에 해당하며 무덤방 둘레에 돌무지(積石) 묘역 시설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