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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교동 유적(慶州 校洞遺蹟) | |||
| 이칭별칭=경주 교동 유적, 경주 월성 | | 이칭별칭=경주 교동 유적, 경주 월성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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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도현 | | 집필자=이도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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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1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교동 유적, 경주 월성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53-1, 89-7, 159-1, 인왕동 455, 황남동 402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경주 월성, 월성 해자, 집자리, 화덕 자리, 혹무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민무늬 토기, 조갯날 돌도끼, 간 돌살촉, 간 돌창, 돌칼, 갈판, 돌창, 반달 돌칼, 돌대팻날, 숫돌, 갈돌, 흔암리식 토기 단계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도현 |
설명
사적 경주 월성·경주 재매정.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53-1, 89-7, 159-1, 인왕동 455, 황남동 402에 위치한다. 교동 89-7 유적(재매정지)은 학술 연구 목적으로 1991~1993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하였고, 이후 유적 주변 정비를 위해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2013~2014년 황남동 402 유적을 조사하였다. 인왕동 455 유적은 월성 종합조사를 위한 학술 연구 목적으로 1999~2000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하였다. 교동 53-1 유적은 교촌 한옥마을 공사에 앞서 2011~2012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조사하였고, 교동 159-1 유적은 월성교지 복원 공사 및 주변 정비 사업으로 2015·2016년 삼한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였다. 재매정지(財買井址)와 주변에서 조사된 교동 유적, 월성 해자(月城垓字)를 묶어서 교동 유적으로 명명하였다. 유적은 형산강으로 흘러가는 남천의 북쪽 일원에 입지한다. 유적은 반경 500m 범위에 위치한다.
재매정지 유적은 여러 차례 조사되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교동 89-7 유적을 3차에 걸쳐 조사하여 집자리 2기 및 통일 신라~고려 시대까지의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집자리는 방형이며, 장축은 남북 방향이다. 1호는 길이 3.5m, 너비 3.1m, 깊이 0.25m이고 내부에서 화덕 자리 1개가 확인되었다. 2호는 길이 4.1m, 너비 4m, 깊이 0.25m이며, 화덕 자리 1개와 기둥 구멍 11개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혹무늬 토기(突瘤文土器),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의 민무늬 토기와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 돌살촉, 간 돌창(磨製石槍), 돌칼(石刀), 갈판(碾石) 등이 출토되었다.
이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재매정지 유적의 4차 발굴을 진행하여(황남동 402), 집자리 1기 및 통일 신라 시대 유구를 다수 확인하였다.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은 북서-남동 방향이다. 길이 8.46m, 너비 4.3m, 깊이 0.58m이며, 내부 시설로 화덕 자리 1개, 기둥 구멍 8개, 구덩이(竪穴)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孔列文)와 혹무늬가 있는 바리(鉢) 모양 또는 항아리(壺) 모양의 민무늬 토기와 돌창,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片刃石斧), 숫돌(砥石), 갈돌 등의 돌 연장이 있다. 집자리에서 남서쪽으로 10.6m 떨어져 민무늬 토기 파편이 포함된 돌더미(積石)가 위치한다.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8~30㎝의 냇돌(川石)이 지름 3.12~3.3m, 높이 0.22m로 쌓았다.
인왕동 455 유적(월성해자)은 월성의 4호 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형태는 장방형이고, 장축 방향은 북서-남동이다. 길이 4.3m, 너비 3.7m, 깊이 0.2m이며, 내부에서 기둥 구멍과 벽 도랑(壁溝) 이 확인되었다.
교동 53-1 유적(교동 17-1 유적)은 집자리 1기, 도랑(溝) 1기 및 삼국~통일 신라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조사 범위 내 확인된 부분만 조사하였으며, 형태는 방형으로 추정된다. 길이 3.7m, 너비 1.6m, 깊이 0.43m이며, 바닥에서 다수의 목탄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1점이 확인되었다. 교동 159-1 유적은 집자리 1기, 도랑 1기 및 삼국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길이 2.8m, 너비 1.4m, 깊이 0.06m이다. 내부 시설은 없으며, 폐기 이후에 쌓인 돌더미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鉢形土器) 파편 뿐이다.
유적의 연대는 흔암리식 토기 단계로 판단된다. 유적은 경주 시가지의 하천 변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지정정보
| 구분 | 지정 종목 | 지정 명칭 | 자세히 보기 |
|---|---|---|---|
| 국가유산 | 사적 | 경주 월성 (慶州 月城) | 🔗 |
| 국가유산 | 사적 | 경주 재매정 (慶州 財買井)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