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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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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관산리 고인돌군[殷栗 冠山里支石墓群]
| 이칭별칭=은율 관산리 고인돌군, 은율 관산리 지석묘군, 은률 관산리 고인돌군, 은률 관산리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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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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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1 판


관산리 고인돌군[殷栗 冠山里支石墓群]
기본 정보
동의어 은율 관산리 고인돌군, 은율 관산리 지석묘군, 은률 관산리 고인돌군, 은률 관산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황해남도 은률군 관산리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팽이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황해남도 은률군 관산리에 위치한다. 관산리 고인돌군을 대표하는 1호 고인돌은 관산리 소재지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화산 봉우리와 잇닿은 해발 80m 높이의 산마루에 있는데, 관산리 일대에 있는 고인돌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1호 고인돌은 지표면에서 약간 높여 땅을 돋우고 그 위에 만들었다. 판자 모양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8.75m, 너비 4.5m, 두께 0.31m이며 무게는 약 70톤 정도로 판단된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3.3m, 너비 1.4m, 높이 2.15m이며, 무덤 바닥에 기초 홈을 깊이 0.66m 정도 파낸 다음 판자 모양으로 다듬은 받침돌(支石)을 먼저 세우고 그 밖으로 막음돌(閉塞石)을 세웠다. 이와 같은 구조 형식은 서북한 일대의 고인돌 무덤 조립 형식과는 다르며, 랴오둥의 가이저우 스펑산 고인돌(石棚山支石墓)과 다스차오 스펑위 고인돌(石棚峪支石墓)과 같은 것이다. 받침돌과 막음돌은 안쪽으로 기울여 뚜껑돌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관산리 2호 고인돌은 갈촌마을 호숫가에 있다. 크기는 1호보다 작은 편이며 막음돌이 받침돌 안에 들어와 ‘ㅍ’자 모양이다. 3호 고인돌은 돌널 바닥에 길이 1.4m, 너비 0.8m, 두께 0.04m의 판돌(板石) 1매를 깔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4호 고인돌은 곁관이 달린 구조로 서쪽 무덤방은 판돌을 전면에 깐 것으로 길이 1.8m, 너비 0.68m, 높이 1m이며, 동쪽은 길이 1.9m, 너비 0.85m, 높이 1m이다. 곁관이 달린 고인돌은 연탄 신흥리(두무리), 금교동 5호 고인돌에도 나타난 바있다. 껴묻거리팽이 토기(角形土器)로 아가리가 안쪽 벽을 밖으로 제쳐지게 한 단면 삼각형으로 늦은 시기의 특징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