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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검단리식 토기(檢丹里式土器) |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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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배진성 | | 집필자=배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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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1 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울산 검단리 유적 |
| 키워드 | 검단리 유형, 검단리식 집자리, 울산 검단리 유적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배진성 |
설명
청동기 시대 토기는 일반적으로 이른 시기의 복합무늬가 점차 소멸되면서 한 가지 무늬만 있는 단순 혹은 단독 무늬가 새겨진 토기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울산, 경주, 포항 지역은 복합무늬가 사라지면서 가로줄무늬(橫線文) 혹은 낟알무늬라고 하는 새로운 무늬가 나타나는데, 이 무늬가 새겨진 토기를 ‘검단리식 토기’라고 한다. 토기 기종은 이전부터 있던 바리 토기(鉢形土器)가 대표적인데, 여기에 손잡이(把手)가 붙는 특징도 보인다. 이 토기의 정의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토기 양식(土器樣式)의 개념으로서 낟알무늬가 새겨진 손잡이가 달린(把手附) 바리 토기 및 이와 함께 출토되는 여러 토기를 포함하는 견해, 낟알무늬가 새겨진 바리 토기 한 종류만을 가리키는 견해이다. 그러나 두 의견 모두 낟알무늬가 새겨진 손잡이가 달린 바리 토기가 검단리식 토기를 대표한다는 점에는 일치한다. 울산 검단리 유적 등에서 이 토기와 함께 출토된 토기를 보면, 검단리식 토기 이전부터 있었던 무늬도 있는데, 구멍무늬(孔列文)는 이전에 비해 뚫린 깊이가 얕아졌고,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는 길이가 짧고 폭이 넓어졌다. 또 작은 독 모양 토기(小形甕), 붉은 간 긴 목 항아리를 비롯하여 무늬가 없는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얕은 바리 토기(淺鉢形土器)도 적지 않다. 검단리식 토기의 시기는 청동기 시대의 늦은 시기로서 송국리 문화 단계와 거의 일치하며, 발생에 대해서는 외부적인 영향보다는 재지적 전통의 변화와 계승으로 이해된다. 출토 지역은 주로 울산, 경주,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남해안 지역이며 그 주변 지역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이전 시기의 역삼동·흔암리식 토기나 같은 시기의 송국리식 토기는 분포 범위가 넓은데 비해 검단리식 토기는 동남해안 지역이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송국리식 토기가 분포하지 않는 지역 가운데 가장 먼저 설정된 지역적 토기 명칭으로, 검단리 유형 혹은 검단리 문화 설정의 주요 근거가 되었으며 송국리 문화가 분포하지 않는 비송국리 문화권, 특히 동남해안 지역의 지역성 연구를 촉발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