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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신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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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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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0일 (화) 05:27 판


생산 경제(生産經濟)
기본 정보
시대 신석기 시대
관련 정보
유적 태안 안면도 고남리 조개더미
키워드 재배, 신석기 시대 농경, 획득 경제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4
집필자 김은영



설명

생산 경제는 인간에 의해 순화된 자원을 재배, 사육하여 사용하는 생계 방식이다. 인류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특정 식물과 동물의 생장 및 생식 주기에 개입하고 이 과정에서 형질적, 유전적 변이를 일으킨 순화 자원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활용한다는 점에서, 자연에 분포하는 자원을 그대로 활용하는 획득 경제에 대비된다. 이러한 생산 경제의 도입은 생계 방식의 변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 규모와 정착도, 부(富)의 불평등 분배와 계급 형성, 권력 세습 등 일련의 사회·정치적 변화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획득 경제와 생산 경제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농경과 목축이라는 새로운 생계 방식으로의 이행이 단절적이고 단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최근 문화적·환경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발전 경로 및 양상을 거쳐 생산 경제에 이르게 된다는 의견이 활발히 제시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획득 경제로 점진적·자연적으로 이행하였다고 보거나(Harris, 2010),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생계 경제가 단순한 과도기라기보다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체계로 기능하였다는 것이다(Smith, 2001). 이러한 맥락에서 농경 또는 생산 경제는 문화적 활동으로서의 재배나 생물학적 변화인 순화에 국한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서는 조와 기장이 적극적으로 이용·재배되었다. 조와 기장은 중국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순화된 상태로 한반도로 전해져 신석기 시대 전기(창녕 비봉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부터 확인된다.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에는 해안 지역에 입지한 다양한 규모의 거주 유적(시흥 능곡동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을 중심으로 재배되며, 이러한 생계 방식은 후기에 남부 내륙 지역으로 확산한다. 콩과 팥 등 두류(豆類)는 유적에 따라 소량이 확인된다. 두류의 순화종이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인 관리와 이용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이경아, 2005, 2014; 이희경 2023). 한반도에서 가축으로서의 동물 사육초기 철기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만, 개는 다수의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통영 연대도 유적, 태안 안면도 고남리 조개더미,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창녕 비봉리 유적, 인천 대연평도 까치산 조개더미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는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 개가 사육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이준정, 2009).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