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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시량광 유적 | |||
| 이칭별칭=서량광 유적(北京 西梁垙遺蹟) | | 이칭별칭=서량광 유적(北京 西梁垙遺蹟)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중국 | |||
| 소재지=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옌칭구(延慶區) 주셴향(舊縣鄕) 구청촌(古城村) | |||
| 성격=고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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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김동일 | | 집필자=김동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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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은 춘추 후기(또는 기원전 6~5세기대)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인 전국 중기(또는 기원전 4세기대)까지 조성된다. 시량광 유적은 비교적 자료가 풍부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의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 유적은 춘추 후기(또는 기원전 6~5세기대)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인 전국 중기(또는 기원전 4세기대)까지 조성된다. 시량광 유적은 비교적 자료가 풍부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의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 ||
==참고문헌== | |||
* 김동일. (2019). 옥황묘문화의 편년과 전개양상. <i>한국상고사학보, 105</i>, 81-121. https://www.riss.kr/link?id=A106346123 | |||
* 文物出版社. (2010). <i>军都山墓地—葫芦沟与西梁垙</i>. | |||
* 金东一. (2018). <i>玉皇庙文化青铜器硏究</i>. (박사 학위 논문). 吉林大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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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9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서량광 유적(北京 西梁垙遺蹟)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중국 |
| 소재지 |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옌칭구(延慶區) 주셴향(舊縣鄕) 구청촌(古城村)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분 |
| 키워드 | 널무덤, 움무덤, 위황먀오 문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동일 |
설명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옌칭구(延慶區) 주셴향(舊縣鄕) 구청촌(古城村)에 위치한다. 쥔두산(軍都山) 일대에 분포한 세 개의 유적 중 하나이다. 1965년 농민들이 밭을 갈던 중 무덤을 발견하였다. 1985~1987년까지 몇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0년 인접한 후루거우 유적과 함께 보고되었다.
무덤은 널무덤(木棺墓)과 움무덤(土壙墓)으로, 총 47기가 조사되었다. 그중 41기는 위황먀오 문화(玉皇廟文化)에 속한다. 출토 유물은 총 1,163점이며, 유물이 다수 확인된 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이단으로 판 것도 있다.
유물은 대부분 널 내부에서 출토되었다. 널 바깥에는 말·소·양·돼지·개 등 다양한 동물을 순생(殉牲)하였다. 토기류는 협사토기(狹沙土器)와 니질토기(泥質土器) 등이 출토되었고, 석기류는 천주(串珠), 여석(礪石)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는 정(鼎), 두(豆), 화(俰), 관(罐) 등의 용기류와 검(劍), 과(戈), 촉(鏃) 등의 무기류, 부(斧), 분(錛), 도(刀), 추(錐), 착(鑿) 등 공구류가 있다. 이외에 대구(帶鉤), 요대장식(腰帶裝飾), 포(泡), 주(珠), 이식(耳環) 등 장식구, 첨수도폐(尖首刀幣) 등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골각기는 골촉 등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무덤은 25호 무덤으로 널무덤이다. 피장자는 40~45세 남성으로 추정되며, 말·소·양·개를 순생하였다. 출토 유물에는 모래가 섞인 홍색 토기와 금제 이식, 도, 과, 촉, 분, 도, 추, 착, 대구, 요대장식, 포와 마구(馬具) 등의 다양한 청동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동검은 전체 길이가 31㎝이며, 검격(劍格)의 양 끝에는 동물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자루 끝에는 마주보는 네 마리의 포유류가 있는데 그중 한 쌍은 호랑이다. 동도는 병부 끝에 고리(團環)가 부착되어 있다. 분은 돌대(突帶) 한 줄이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 요대장식은 말과 짐승 두 종류가 조합된 형태이며, 총 46점이 출토되었다.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인 전국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26호 무덤의 피장자는 25세 전후의 남성으로 추정된다. 중위안의 특징인 도철문(饕餮文) 청동 대구가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서 위황먀오 문화가 소멸한 이후, 이 지역을 중위안 세력이 차지하였고 그 결과 이러한 중위안계 무덤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유적은 춘추 후기(또는 기원전 6~5세기대)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인 전국 중기(또는 기원전 4세기대)까지 조성된다. 시량광 유적은 비교적 자료가 풍부하여 위황먀오 문화 소멸 이후의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김동일. (2019). 옥황묘문화의 편년과 전개양상. 한국상고사학보, 105, 81-121. https://www.riss.kr/link?id=A106346123
- 文物出版社. (2010). 军都山墓地—葫芦沟与西梁垙.
- 金东一. (2018). 玉皇庙文化青铜器硏究. (박사 학위 논문). 吉林大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