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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고진다니 유적 | |||
| 이칭별칭=이즈모 고진다니 유적 | | 이칭별칭=이즈모 고진다니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일본 | |||
| 소재지=일본 시마네현(島根県) 이즈모시(出雲市) 히카와정(斐川町) | |||
| 성격=복합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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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창희 | | 집필자=이창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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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다니 유적은 358점의 대량의 동검이 모두 같은 형식이며, 동시에 부장된 것이 명확하다. 또한 조사당시 청동기의 확인 사례가 비교적 적었던 산인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점 등 야요이 시대의 청동기 연구사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이다. | 고진다니 유적은 358점의 대량의 동검이 모두 같은 형식이며, 동시에 부장된 것이 명확하다. 또한 조사당시 청동기의 확인 사례가 비교적 적었던 산인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점 등 야요이 시대의 청동기 연구사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이다. | ||
==참고문헌== | |||
* 島根県教育委員会. (1995). <i>出雲神庭荒神谷遺跡1~4</i>. https://sitereports.nabunken.go.jp/en/search/item/13824?all=出雲神庭荒神谷遺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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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8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이즈모 고진다니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일본 |
| 소재지 | 일본 시마네현(島根県) 이즈모시(出雲市) 히카와정(斐川町)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동검, 청동 투겁창, 청동 종방울, 야요이 시대, 구덩이, 기둥 구멍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창희 |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시마네현(島根県) 이즈모시(出雲市) 히카와정(斐川町)에 위치한다. 다이코쿠산(大黒山)의 해발 22m 구릉 남동쪽 사면에 입지한다. 일본 최대의 청동기 매납 유적으로 동검 358점, 청동 투겁창 16점, 청동 종방울(銅鐸) 6점이 출토되었다. 야요이 시대 청동기 문화에서 산인(山陰) 지역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1987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청동 유물은 199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동검은 4줄로 정연하게 배열된 채로 출토되었으며,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후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검이 매납된 구덩이(竪穴) 주변으로 3개의 기둥 구멍이 발견되어 상부 구조물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358점의 동검 중 344점에서 슴베 부분에 ‘×’ 표시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고진다니 유적에서 3.5㎞ 떨어진 가모이와쿠라 유적(加茂岩倉遺跡)을 포함해 두 유적에서만 확인되었다. ‘×’ 표시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의례적 행위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청동 투겁창은 야요이 시대 중기~후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모든 청동 투겁창의 공부(銎部) 속에서 내범(內范)의 흙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또한 적색 안료가 칠해진 청동 투겁창도 2점이 발견되어 의기(儀器)의 성격이 매우 강했음을 보여준다. 청동 종방울은 야요이 시대 전기말~중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모두 소형이며, 청동 투겁창과 함께 출토되었다. 그중 한 점은 뉴(紐)에 외연(外緣)이 없고, 몸통에는 기(鰭)가 없는 최고(最古) 형식으로, 제작 시기가 다른 청동 종방울이 함께 매납되었다.
고진다니 유적은 358점의 대량의 동검이 모두 같은 형식이며, 동시에 부장된 것이 명확하다. 또한 조사당시 청동기의 확인 사례가 비교적 적었던 산인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점 등 야요이 시대의 청동기 연구사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이다.
참고문헌
- 島根県教育委員会. (1995). 出雲神庭荒神谷遺跡1~4. https://sitereports.nabunken.go.jp/en/search/item/13824?all=出雲神庭荒神谷遺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