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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현정리 고인돌군 | |||
| 이칭별칭=곡성 현정리 고인돌군, 곡성 현정리 지석묘군 | | 이칭별칭=곡성 현정리 고인돌군, 곡성 현정리 지석묘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현정리 677-2 일원 | |||
| 성격=고인돌 | |||
| 키워드=[[고인돌]] | | 키워드=[[고인돌]] | ||
|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신상효 | | 집필자=신상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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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무덤 공간을 만들지 않은 1기(1호)와 [[무덤방|무덤방(墓室)]]을 안치한 돌덧널형(石槨形) 2기 등으로 나누어진다. 1호 [[덮개돌|덮개돌(上石)]]의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9m, 무게는 8.5톤이다. 덮개돌 아래에 굵은 자갈돌과 퇴적된 사질토로 이루어진 적석(積石)이 길이 5m, 너비 4m 범위에 있고 3매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어 형태적으로는 고인돌로 보이지만 하부에 무덤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편, [[돌낫|돌낫(石鎌)]],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으며, 돌칼의 깨진 편은 받침돌 하부와 적석에서 각각 출토되었는데 서로 접합되고 있다. 4호는 하부에 반지하식 무덤방을 안치한 것으로 무덤방은 길이 1.16m, 너비 0.35m, 깊이 0.38m의 돌덧널형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상하 2겹의 뚜껑을 덮은 겹뚜껑식(二重蓋石式)인데, 하단은 동쪽 끝에 놓인 판돌(板石)이 남아 있고 상단은 1매의 판돌로 덮었다. 벽석은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혼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번갈아 2~3단 쌓고, 제일 윗면에는 넓은 판돌을 돌려놓아 돌널을 보호하였다. 바닥은 납작한 돌을 듬성듬성 깔았다. 유물은 구멍이 있는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孔有莖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편 등이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판돌 열과 주변에서 간 돌살촉, [[돌도끼|돌도끼]]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등이 수습되었다. [[간돌검|간 돌검]]의 형태는 [[여수우두리유적|여수 우두리 1호 고인돌]], [[여수월내동상촌고인돌군|여수 월내동 8호 고인돌]] 출토품과 유사하다. | [[고인돌|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무덤 공간을 만들지 않은 1기(1호)와 [[무덤방|무덤방(墓室)]]을 안치한 돌덧널형(石槨形) 2기 등으로 나누어진다. 1호 [[덮개돌|덮개돌(上石)]]의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9m, 무게는 8.5톤이다. 덮개돌 아래에 굵은 자갈돌과 퇴적된 사질토로 이루어진 적석(積石)이 길이 5m, 너비 4m 범위에 있고 3매의 [[받침돌|받침돌(支石)]]이 있어 형태적으로는 고인돌로 보이지만 하부에 무덤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편, [[돌낫|돌낫(石鎌)]],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으며, 돌칼의 깨진 편은 받침돌 하부와 적석에서 각각 출토되었는데 서로 접합되고 있다. 4호는 하부에 반지하식 무덤방을 안치한 것으로 무덤방은 길이 1.16m, 너비 0.35m, 깊이 0.38m의 돌덧널형이다. [[뚜껑돌|뚜껑돌(蓋石)]]은 상하 2겹의 뚜껑을 덮은 겹뚜껑식(二重蓋石式)인데, 하단은 동쪽 끝에 놓인 판돌(板石)이 남아 있고 상단은 1매의 판돌로 덮었다. 벽석은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혼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번갈아 2~3단 쌓고, 제일 윗면에는 넓은 판돌을 돌려놓아 돌널을 보호하였다. 바닥은 납작한 돌을 듬성듬성 깔았다. 유물은 구멍이 있는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孔有莖式磨製石劍)]], [[간돌살촉|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편 등이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판돌 열과 주변에서 간 돌살촉, [[돌도끼|돌도끼]]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등이 수습되었다. [[간돌검|간 돌검]]의 형태는 [[여수우두리유적|여수 우두리 1호 고인돌]], [[여수월내동상촌고인돌군|여수 월내동 8호 고인돌]] 출토품과 유사하다. | ||
==참고문헌== | |||
* 전남대학교박물관. (1997). <i>호남고속도로 확장구간(고서~순천간) 문화유적발굴보고서Ⅰ-곡성 현정리·연반리 유적-</i>. |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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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7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곡성 현정리 고인돌군, 곡성 현정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현정리 677-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신상효 |
설명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현정리 677-2 일원에 위치한다. 1993년 호남 고속 도로 확장 공사에 포함되어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군은 현정리 마을의 북쪽 해발 90m의 평탄한 독립 구릉의 말단부에 축조되어 있으며 5기 가운데 2기는 이미 공사로 파괴되었다.
고인돌의 하부 구조는 무덤 공간을 만들지 않은 1기(1호)와 무덤방(墓室)을 안치한 돌덧널형(石槨形) 2기 등으로 나누어진다. 1호 덮개돌(上石)의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2.5m, 너비 2.2m, 두께 0.9m, 무게는 8.5톤이다. 덮개돌 아래에 굵은 자갈돌과 퇴적된 사질토로 이루어진 적석(積石)이 길이 5m, 너비 4m 범위에 있고 3매의 받침돌(支石)이 있어 형태적으로는 고인돌로 보이지만 하부에 무덤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편, 돌낫(石鎌), 삼각 돌칼,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으며, 돌칼의 깨진 편은 받침돌 하부와 적석에서 각각 출토되었는데 서로 접합되고 있다. 4호는 하부에 반지하식 무덤방을 안치한 것으로 무덤방은 길이 1.16m, 너비 0.35m, 깊이 0.38m의 돌덧널형이다. 뚜껑돌(蓋石)은 상하 2겹의 뚜껑을 덮은 겹뚜껑식(二重蓋石式)인데, 하단은 동쪽 끝에 놓인 판돌(板石)이 남아 있고 상단은 1매의 판돌로 덮었다. 벽석은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혼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번갈아 2~3단 쌓고, 제일 윗면에는 넓은 판돌을 돌려놓아 돌널을 보호하였다. 바닥은 납작한 돌을 듬성듬성 깔았다. 유물은 구멍이 있는 슴베 간 돌검(有孔有莖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편 등이 내부에서 출토되었으며, 판돌 열과 주변에서 간 돌살촉, 돌도끼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등이 수습되었다. 간 돌검의 형태는 여수 우두리 1호 고인돌, 여수 월내동 8호 고인돌 출토품과 유사하다.
참고문헌
- 전남대학교박물관. (1997). 호남고속도로 확장구간(고서~순천간) 문화유적발굴보고서Ⅰ-곡성 현정리·연반리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