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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침촌리 고인돌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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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59년 || 황해남도 황주군 심촌리 긴동 고인돌 || 1963 || 사회과학출판사 | | 발굴조사 || 1959년 || 황해남도 황주군 심촌리 긴동 고인돌 || 1963 || 사회과학출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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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 석광준. (1979). 우리나라 서북지방 고인돌에 관한 연구. <i>고고민속론문집, 7</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446 | |||
* 황기덕. (1963). 황해남도 황주군 심촌리 긴동 고인돌. <i>고고학자료집, 3</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5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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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일 (목) 12:26 기준 최신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황주 침촌리 고인돌군, 황주 침촌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오덕형, 침촌형, 슴베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턱자귀, 돌창, 반달돌칼, 가락바퀴, 돌돈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일대에 위치한다. 고인돌군은 정방산 서쪽 구릉 일대의 천진동, 극성동, 긴동, 신대동의 골짜기와 구릉을 따라 몇 기 또는 몇 십 기씩 무리를 지어 있다. 정방산 서쪽 산마루에는 채석장도 2곳 있다. 1958년에 천진동, 극성동 고인돌을, 1959년에는 신대동, 긴동 일대의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다.
긴동 고인돌은 정방산 서북쪽 언덕에 남북으로 8기가 분포하는데, 그중 5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1호 고인돌은 오덕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침촌형이다. 덮개돌(上石) 아래 0.3m의 깊이에서 돌무지(積石) 안에 돌널을 짜 무덤방을 만들었다. 돌무지는 돌널 옆이 두께 0.5~0.6m이며 멀리 갈수록 얇아진다. 덮개돌은 지름 2m 이하의 작은 것들이다. 3~6호는 길이 11m, 너비 3~4m인 하나의 돌무지 안에 들어 있으며, 덮개돌 밑에 돌널이 남북으로 1열로 놓여 있다. 3호 고인돌의 무덤방은 길이 1m, 너비 0.3~0.4m, 높이 0.5~0.6m이다. 무덤방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판돌(板石)을 다시 깐 들림 바닥이다. 긴동 고인돌의 껴묻거리로는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턱자귀(有段石斧), 돌창(石槍) 등이 나왔다. 침촌형 제1 유형으로 같은 유형은 오덕리 평촌 고인돌이 있다.
천진동에는 30m 길이에 ‘ᄀ’자 모양으로 6기의 고인돌이 있다. 북쪽에 1~3호, 남쪽에 4~6호 고인돌이 8m 거리를 두고 놓여 있다. 북쪽의 것은 개별 묘역을 가지는 침촌형 고인돌이고, 남쪽의 것은 하나의 돌무지 묘역을 이루고 있다. 덮개돌은 3개만 있으나 묘역 안에 돌널은 모두 9기이고, 서쪽에 훼손된 부분에도 돌널이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덮개돌도 돌널마다 모두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무덤방은 장축에 두툼한 판돌을 세워서 만든 것(4호), 얇은 판돌로 무덤방을 짜고 바닥에 자갈을 깔고 그 위에 판돌을 깐 것이 있다. 침촌형 고인돌 제1 유형으로 부른다. 개별 묘역을 가진 천진동 1호 고인돌은 두터운 받침돌(支石)을 양쪽에 세우고 얇은 판돌로 막음돌(閉塞石)을 세운 형식이다. 무덤방 바닥에는 주먹만한 돌을 한벌 깔았다. 1호에서 간 돌검과 턱자귀, 남쪽 돌무지에서 반달 돌칼,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침촌 제4 유형이다.
극성동 고인돌은 천진동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1~5호는 천진동 1호 고인돌과 비슷한 구조로 침촌형 제4 유형이다. 6~9호는 하나의 돌무지 묘역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각각의 덮개돌 밑에 무덤방이 1기씩 있다. 6·7호는 판돌로 무덤방을 짜고 양옆으로 두께 0.2~0.3m의 두터운 받침돌을 덧세워서 보강하였다. 9호는 판돌을 세워서 돌널을 짠 것으로 길이 1.15m, 너비 0.45m, 높이 0.15m이다. 8호는 두터운 받침돌을 양쪽에 세워서 무덤방으로 하였다. 하나의 돌무지 안에 서로 다른 짜임의 무덤방이 있는 것으로 침촌형 1·3유형의 특징을 가진 침촌형 제2유형이다.
신대동에는 사방 50m 범위 안에 고인돌이 떼를 이루고 있다. 개별 묘역을 가진 것도 있고 2~4호와 같이 하나의 돌무지 안에 들어있는 것도 있다. 2호의 뚜껑돌은 길이 2.7m, 너비 2m, 두께 0.5~0.6m로 장축에 0.2~0.3m 두께의 받침돌을 세우고 그 사이에 얇은 판돌을 막음돌로 삼아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 언저리에는 지름 0.3~0.4m의 막돌로 돌무지를 만들었다. 돌무지에서 돌돈(石貨)이 출토되었다. 침촌형 제3 유형이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1959년 | 황해남도 황주군 심촌리 긴동 고인돌 | 1963 | 사회과학출판사 |
참고문헌
- 석광준. (1979). 우리나라 서북지방 고인돌에 관한 연구. 고고민속론문집, 7.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446
- 황기덕. (1963). 황해남도 황주군 심촌리 긴동 고인돌. 고고학자료집, 3.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520